[역경의 열매] 박춘희 <7> 주님 만나고 달라진 삶… 사시 도전할 용기 생겨

입력 2016-06-06 18:37
2013년 새벽교회 강원도 영성캠프에서 교회 성도들과 함께한 박춘희 서울 송파구청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 어머니는 이 교회 명예권사이고 박 구청장을 비롯한 딸 셋도 모두 권사다.

1990년대 초, 나 박춘희는 달라졌다. 처지를 비관하던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을 만나고 든 생각이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마음과 뜻과 생각이 달라진다. 인간의 판단과 기준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법시험 도전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그땐 참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사법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기 때문에 감히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성령충만까지 했으니 세상 두려울 게 뭐가 있었겠는가.

분식집을 정리하고 가족들에게 나의 이 같은 계획을 전했다. 한 명도 반대하지 않았다. 현재 변호사인 오빠는 대학생 때 시위 등으로 쫓기면서도 사법시험 1차에 거뜬히 합격했다. 군 제대 후에도 바로 2차 합격하는 것을 봐온 나는 ‘오빠도 저리 금방 합격하는데 나도 공부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니가 얼마나 잘난 딸인데 서빙만 하고 있노. 생각 잘했다”고 했다. 어머니도 “느그 오빠도 하는데, 니도 잘 하지 않겄나. 기본 머리는 있어가 쪼매만 하면 합격할 끼다”며 반가워했다.

그런데 막상 가족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보니 ‘이게 잘하는 일인가’ 싶었다. 당시 출석하던 도봉순복음교회(현 순복음한성교회) 함동근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목사님은 이 말씀을 주시며 “말씀을 붙잡고 용기를 내라. 다 잘될 것 같다”고 응원해주셨다.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사법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서울 방학동 집을 떠나 신림동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에게 “2년 정도 공부하고 1차 합격할 끼다. 바로 2차 합격하고. 내 3년 만에 패스 안하겠나”라고 큰 소리를 뻥뻥 쳤다.

그때 내 나이 38세. 기분 같아선 하나님이 금방 합격시켜주실 것 같았다. 당시에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첫해 시험을 쳐보니 상당히 어려웠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주변엔 한 번 시험 삼아 쳐본다고 했지만 막상 떨어졌다고 통보를 받으니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많이 울었다.

두 번째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밤 12시 잠자리에 누우면 금방 곯아떨어졌다. 그러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하루 18시간을 꼬박 앉아 공부만 했다. 잠자고 공부하는 시간을 뺀 나머지 1시간은 세수하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데 사용했다.

그런데 또 떨어졌다. 지속하는 게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다시 마음을 잡았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세 번째 시험은 한 문제 차로 떨어졌다. 이럴 때 느슨해지는 심신을 경계해야 하는데, 한 문제로 떨어졌다고 하니 자만심이 생겼다.

‘한 문제야 극복 못하겠나.’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데 방심하고 말았다. 네 번째 시험에선 10개 차 이상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덜컥 겁이 났다. ‘내 이래 가지고 평생 합격할 수 있겠나. 못 하는 거 아이가. 공부한답시고 하나님께 느무 무관심했다. 방심했다.’

사법시험 합격을 위해선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3박자 시험공부’였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