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따가운 시선에 더 아팠습니다”… 장기기증자 유족들, 고통의 마음 문을 열다

입력 2016-06-06 04:42
장기기증인의 유가족들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열린 ‘도너패밀리’ 모임에 참석해 마음속 이야기를 담은 종이에 색칠을 하거나 여러 색깔의 한지를 붙이고 있다. 마음의 상처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미술치료의 하나다. 아래 사진은 모임이 끝난 후 각자 만든 작품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건강했던 내 아들 몸이 아까워서, 다른 사람을 살리면 아들이 이 세상에 살아남는 것 같아서 결정한 일인데 나중에 돌아오는 말들이 너무 아팠다.”

장부순(73)씨는 2011년 아들 이종훈(당시 34세)씨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다정다감했던 아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을 당하면서도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기 위해 장기기증을 택했다. 그런데 주변의 가시 돋친 말들이 이어졌다.

“엄마가 자식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 잔인하다.” “장기기증하면 얼마나 받느냐.” 말은 비수가 돼 가슴에 꽂혔다.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사회에선 장기기증을 장려하고 숭고한 일이라 치켜세웠지만 남은 가족이 마주하는 현실은 너무 차가웠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만날 아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해 더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들의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도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 생각한다. 장씨는 “이식받은 사람들이 기증자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지 마시라’고 말한다”며 “어디에 사는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가족이 생긴 거니까 그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장씨는 아들의 장기를 받은 사람들을 계속 ‘가족’이라고 불렀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 장씨와 같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5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그림으로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술치료 전문가의 설명에 따라 사람들은 펜을 들어 종이에 먼저 떠난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 내려갔다.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긴 편지와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들이 빈 종이를 채웠다. 장씨는 미움이 아닌 그리움을 담아 ‘나쁜 놈’이란 세 글자를 적었다. 몇몇은 펜 뚜껑도 열지 못한 채 한참동안 눈물만 훔쳤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2013년부터 기증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남은 가족을 위로·격려하기 위해 ‘도너패밀리(Donor Family)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고,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을 나누는 유일한 자리다. 또한 기증자를 ‘기억’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2009년 남편 김기호(당시 41세) 목사를 교통사고로 잃은 서정(44)씨는 “늘 마음에 품고 살아가지만 굳이 헤집어내 아프고 싶지 않아 참석을 꺼리다 오게 됐다”며 “처음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는데 같은 처지의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받게 돼 바쁜 일이 없으면 아이들과 꼭 참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없다면 그분(남편)이 사랑을 나누고자 한 장기기증이 금방 잊혀져버릴 것”이라며 “누군가 기억해준다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장기기증 유가족 중 ‘그는 원하지 않았는데 내 생각대로 판단한 게 아닐까’라는 마음의 짐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주변의 말로 상처받는 일도 많다. 숭고한 뜻을 지지하고 마음을 위로해줄 심리치료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