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를 두고 한·미 간 미묘한 온도차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적극적인데 한국이 속도조절을 하는 모양새다. 중국 견제에 박차를 가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대북 지렛대가 여전히 절실한 한국의 입장차에 기인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포문은 미국이 먼저 열었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사드 논의를 하겠다고 밝히면서다. 특히 카터 장관은 “사드 (배치) 계획이 진전되고 있으며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도 아니다”라고도 해 배치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논란이 번지자 한 장관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한 장관은 3일 “(사드 배치는) 한·미 공동실무단에서 협의가 진행 중이며 여기에 대해선 한·미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 또한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미 간 온도차가 있는 건 아니다”면서 “카터 장관의 발언을 살펴봤을 때 (사드 논의에 관한) 원론적 얘기를 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급물살을 타던 한·미 간 사드 배치 논의는 지난 2월말과 3월초를 기점으로 기세가 급격히 수그러들었다. 이때는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통한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하기로 미국과 합의한 시점이어서 사드는 결국 중국을 대북 압박 공조로 이끌기 위한 ‘협상 카드’였다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지난 3월 안보리 결의 2270호가 만장일치로 채택된 직후부터 한·미 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해선 ‘입단속’을 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2월 23일로 예정됐던 한·미 공동실무단 운영 약정 체결이 차일피일 미뤄지다 열흘 가까이 지난 3월 4일에야 이뤄지기도 했다. 이후로도 사드와 관련해선 구체적인 진행 상황이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한반도 사드를 매우 꺼리는 중국을 의식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행보다.
때문에 사드 배치에 갑작스레 열을 올리는 미국의 의도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중국이 안보리 제재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공언한 이상 미국 측으로선 사드 배치 논의를 미룰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는 분석이 우선 제기된다. 중국이 안보리 결의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북 제재에 나서도록 다시금 압박하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對中) 포위망에 한국이 동참토록 압박하려는 포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중국해 분쟁을 둘러싸고 중국과 필리핀이 벌이는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을 앞두고 한국이 사실상 필리핀 편을 드는 입장을 표명할 것을 미국 측이 요청했다는 아사히신문 보도도 의미심장하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필리핀과 중국의 중재재판 진행 동향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면서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합의와 공약, 국제적으로 확립된 행동 규범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표명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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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04 00:35 수정 2016-06-04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