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1924∼2015) 화백의 ‘미인도’를 둘러싼 진위 논란은 언제쯤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논란은 1991년 불거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인도’를 전시하자 천 화백이 “내 작품이 아니다”며 반발했다. 이후 한국화랑협회 감정 결과 진품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자 천 화백은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겠느냐”며 큰딸 이혜선씨가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98년에는 권춘식씨가 검찰 조사에서 “내가 위조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잠잠하던 ‘미인도’ 논란은 지난해 천 화백이 숨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천 화백의 유족이 마리 현대미술관장을 ‘사자명예훼손’ 등으로 검찰에 고소하고, 현대미술관은 각계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미인도’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립미술관은 천 화백 1주기(8월 6일) 추모전을 14일부터 연다. 법정 공방으로까지 치닫게 된 ‘미인도’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해 알아본다.
김재규 집에서 나온 게 맞나
‘미인도’는 1979년 10·26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재산을 압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공보부로 옮겨진 그림은 80년 5월 3일 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됐다. 당시 공문에는 ‘천경자 미인도 그림 1점 30만원’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 출처와 크기가 명시돼 있지 않다.
천 화백의 작은딸 김정희씨는 “‘미인도’가 김재규 집에서 나왔다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공부에서 작품을 이관할 당시의 기록과 현대미술관 수장고 입고 기록을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인도’가 문공부에서 이관된 것과 동일한 작품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화랑협회 감정은 믿을 수 있나
화랑협회는 감정 결과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 내리면서 단서를 달았다. “작가가 위작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 결론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유족 측은 안료를 분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진위파악 불능”을 통보했는데도 현대미술관이 진품으로 발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창실 화랑협회 회장 명의로 현대미술관에 1991년 제출된 감정서에는 ‘미인도’ 크기가 30.5×27.4㎝인 반면 현대미술관이 당시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29㎝×26㎝로 돼 있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90년 8월 31일 작성된 현대미술관의 미인도 복제 발간 승인서에 있는 천 화백의 서명과 평소 서명이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미인도’ 공개는 왜 추진하나
마리 현대미술관장은 얼마 전 유족 측에 편지를 보냈다. “미인도에 대한 국내 여론과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미술관의 정보로는 진위 논란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대중과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도록 작가명은 밝히지 않고 작품명만으로 공개를 고려하고 있다”고 썼다.
이에 유족 측은 “수사 착수를 앞둔 상태에서 현대미술관이 미인도를 공개하겠다는 행위는 법절차에 대한 무시”라고 입장을 밝혔다. “91년 당시 현대미술관과 밀착된 이해관계 당사자인 화랑협회의 엉터리 졸속감정을 등에 업고 위작을 진품으로 둔갑시킨 희극적인 사태를 재현하려는 저의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1주기 추모전과 남은 과제는?
천 화백의 기증품을 소장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은 14일부터 8월 7일까지 ‘천경자 1주기 추모전: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를 연다. ‘생태’(1951) ‘초혼’(1965)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 ‘막은 내리고’(1989) ‘환상 여행’(1995) 등 회화 107점과 작가의 글, 편지, 사진 등 각종 기록을 선보인다.
추상미술이 주도하던 화단에서 한국 채색화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의 예술혼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한 미술계 인사는 “천 화백이 국내외 미술계에 이룬 업적은 전혀 조명되지 않고 ‘미인도’ 논란만 부각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하루빨리 논란이 마무리되고 작가의 작품세계가 제대로 평가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천경자 ‘미인도’, 김재규 집에서 나온 게 맞나
입력 2016-06-05 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