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내 최초 핸드볼 여성심판 이은하·이가을 커플 “2020 도쿄올림픽 가야죠… 큰 무대 꿈”

입력 2016-06-04 04:02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핸드볼 여성 심판 커플인 이은하(왼쪽), 이가을 씨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IHF(국제핸드볼연맹) 국제심판인 이 커플은 “여성으로서 핸드볼 심판을 보는 것이 어렵지만 우리가 잘해야 심판이 되겠다는 후배들이 나오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학 기자
이은하·이가을 커플이 취득한 IHF 국제심판 자격증.
둘은 서로를 “자매보다 더 각별한 짝꿍”이라고 말한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핸드볼 여성 심판 커플인 이은하(28)와 이가을(26). 이들은 지난 1월 31일 서울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2016 SK핸드볼코리아리그 여자부 서울시청과 경남개발공사의 경기에 배정되며 국내 실업 무대에 데뷔했다. IHF(국제핸드볼연맹) 국제심판 자격증도 따냈다. 코트에서 선수만큼 많은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들을 만나 당찬 꿈을 들어 봤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이 커플은 피곤해 보였다.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강릉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 심판을 봤어요. 하루에 2∼3경기를 소화했더니 체력이 바닥났어요. 다음달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에 갈 것 같아요. 국내 리그와 각종 대회에 나서고, 연간 4∼5차례 해외 출장을 가다 보면 일 년이 금세 지나가요.”

핸드볼 선수 출신인 이 커플은 2012년과 2013년 국내 심판강습회에서 심판 자격을 획득했다. 2013년 6월부터 심판을 직업으로 삼은 두 사람은 2013년 9월엔 아시아대륙심판강습회에 합격해 한국 최초 여성 AHF(아시아핸드볼연맹) 대륙심판이 됐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 4월엔 중국 웨이팡에서 열린 IHF 국제심판강습회에 참여해 당당히 시험에 통과했다. 국내에서 IHF 국제심판은 이 커플과 남자 심판인 이석-구본옥 두 커플뿐이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과 2015 아시아여자선수권대회 등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은 이 커플은 3월에는 카타르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아남자클럽대회에 초청되기도 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이 클럽대회에 여성 심판 커플이 초청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은하 심판에게 당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물어 봤다. 그는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중동은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제한된 곳인데, 우리가 남자들의 경기에 심판으로 나서니 모두들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더라고요.” 이가을 심판이 한마디 거들었다. “전 무서웠어요.” 이게 무슨 소리? 그의 설명은 이랬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의 경기에서 판정에 불만을 품은 한 선수가 잔뜩 인상을 쓴 채 날 따라오는 거예요. 혹시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일어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심판은 경기 중 선수들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인다. 자칫 기 싸움에서 선수들에게 밀렸다간 경기를 망칠 수 있다. 이은하 심판은 심판의 권위에 도전하는 선수들을 제압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선수들이 깜짝 놀라도록 휘슬을 세게 부는 거예요. ‘심판의 언어’인 휘슬은 우리가 가진 최고 무기예요.”

심판의 길은 험난했다. 2014년 9월 상임심판제도가 도입되기 전 이은하 심판은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심판 수당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 여자대학에서 체육 강사를 하며 돈을 벌었어요. 그 돈으로 생활하며 다시 심판 활동을 했죠. 결코 만만한 직업이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우리가 잘해야 심판이 되겠다는 후배들이 나오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커플은 2012년부터 함께 코트를 누비기 시작했다. 호흡을 잘 맞을까? 이가을 심판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함께 출장을 다니며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니 서로의 마음을 잘 알죠. 외모도 비슷해 자매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 호호호….”

국제대회에 갔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뭘까? 이은하 심판은 영어라고 했다. “체육인육성재단에서 영어를 배우고, 핸드볼아카데미에서 지원을 받아 미국 연수도 갔다 왔지만 아직 영어가 어려워요. 심판회의를 앞두고는 긴장을 많이 하죠. 저희가 심판을 본 경기에 대해 영어로 토론을 하거든요.”

현재 아시아 출신의 여성 IHF(국제핸드볼연맹) 국제심판은 한국, 중국, 일본에 한 커플씩 있다. 전 세계에서 여성 IHF 국제심판은 16커플밖에 없다. 유럽 출신이 다수이며, 비유럽 출신으로는 6커플(한국·중국·일본·아르헨티나·튀니지·콩고)이 있다.

이 커플의 꿈은 IHF 국제심판이 되는 것이다. “경력을 쌓아 2020 도쿄올림픽에 가고 싶어요. 최소한 두 번은 올림픽 무대에 올라야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커플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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