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 개최된 제115차 국립공원위원회는 제22호 태백산 국립공원 지정을 의결했다.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태백산 정상 장군봉(해발 1567m)과 천제단(1561m) 인근에는 2800여 그루의 주목 군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수명을 다한 고사목들도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하얗게 빛난다. 새해마다 많은 국민이 한 해의 기를 받기 위해 찾는 민족의 명산이 될 만하다. 국립공원 지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아직 태백산이 국립공원이 아니었느냐는 반응이 있으나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강원도는 두 차례(1999, 2011년) 국립공원 지정을 추진했으나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막혀 자진 철회했었다. 삼수 끝에 이뤄진 것이다. 전남 신안군 영산도 명품마을 등 생태보전과 지역소득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국립공원 지정이 지역주민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북 봉화지역 주민들은 열목어(천연기념물 74호) 서식지로 유명한 백천계곡을 태백산 국립공원에 편입시켜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태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어떻게 달라질까. 환경부는 생태계와 자연·문화자원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탐방객들이 태백산의 생태·문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가 있는 국립공원’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먼저 태백산의 생태가 ‘민족의 영산’이라는 말에 어울릴 수 있도록 수종 다양성 사업을 단계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다. 일제 강점기 이 지역이 탄광으로 개발되면서 갱목으로 쓸 만한 나무는 거의 다 베어졌다. 황폐해진 산에는 짧은 기간에 성목으로 자라는 일본잎갈나무가 심어져 그 면적이 180㏊에 이르렀다. 겨울이면 푸른빛을 잃고 황량하게 변해 숲의 경관을 해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국립공원위원회에서도 경관 개선을 위해 태백산 일원의 일본잎갈나무를 토종나무로 바꿔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향후 수십년에 걸쳐 일본잎갈나무를 소나무 등 친숙한 나무로 갱신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태백산을 슬로 탐방문화의 시범지역으로 조성할 것이다. 그간에는 국립공원을 방문하면 산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로 인해 정상 부근의 생태계 훼손이 가중될 뿐 아니라 탐방객들이 다양한 생태·문화적 가치를 체험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환경부는 국립공원 탐방문화를 자연과 공생하는 체험형 슬로 탐방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태백산은 역사·문화·생태적으로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탐방문화를 바꾸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천제단에서 1000년 이상 이어온 제천행사, 국내 최대 야생화 자생단지 금대봉,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석탄산업 이야기까지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굴해 탐방객들과 공유하면서 태백산을 살아 있는 생태박물관(eco-museum)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2017년은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50주년 되는 해다. 사람으로 따지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다. 어느덧 반백년 역사를 가지게 된 국립공원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22번째 국립공원 막내가 된 태백산을 주목해보자.
정연만 환경부 차관 국립공원위원장
[기고-정연만] 국립공원 미래상 연 태백산
입력 2016-06-03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