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가정서 자란 야심만만한 여걸 ‘힐러리 클린턴의 삶’

입력 2016-06-04 04:00
미국에서 출간된 힐러리 클린턴(68) 전 국무장관에 관한 책은 100여권에 이른다. 올해에만 4권이 새로 나왔다. 아직 살아 있는 정치인을 놓고 이렇게 많은 책이 쏟아진 것은 드문 일이다.

일단 ‘비범한 여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의 반영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클린턴이 아직 미스터리이며 수수께끼이기 때문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지금에도 미국 국민은 “클린턴은 도대체 누구인가”라며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보수적 가정의 탁월한 모범생

클린턴은 1947년 10월 26일 미국 중부 일리노이주 최대 도시인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그는 2003년 펴낸 자서전 ‘살아 있는 역사’에서 “어머니는 나와 두 남동생 주위를 맴돌면서 하루를 보내는 주부였고 아버지는 소규모 사업가였다”고 회고했다.

영국 웨일스계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웨일스계 어머니는 뚜렷이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가졌다. 이는 클린턴의 삶에도 대조적인 흔적을 남겼다. 아버지 로댐은 보수적인 공화당 열성 당원이었다. 흑인, 가톨릭 신자는 물론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라면 무조건 편견을 가지고 보는 사람이었다. 부인과 자녀에게도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클린턴은 중·고교 시절과 대학 1, 2학년 때까지 공화당에 큰 호감을 가졌다. 부친의 영향으로 보인다. 1964년 공화당 대선 후보 배리 골드워터의 선거운동을 하면서 그의 저서 ‘보수의 양심(The Conscience of Conservative)’을 열독했다.

그러나 이후 민주당 성향이었지만 밖으로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어머니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이 평생 아동과 복지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머니의 삶과 깊이 연관돼 있다. 클린턴은 자서전에서 “어머니는 모든 인간, 특히 아동이 당하는 학대에 분개했다”고 적었다.

집안의 엄격한 감리교 신앙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합감리교회(UMC)에 출석하는 그는 미국 기독교의 온건진보 진영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보수적인 미국 기독교계의 태도도 많이 공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창시절의 그에 대해 당시 교사와 친구들은 조숙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뛰어난 학생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공감을 얻거나 인기 있는 학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마 선언하자 호감 못 얻는 이유

국무장관 4년 임기 동안 클린턴은 빛나는 존재였다. 국무부 직원들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조지 슐츠와 함께 역대 가장 뛰어난 국무장관으로 클린턴을 꼽는다. 행정능력뿐 아니라 카리스마, 강력한 친화력, 설득력으로 외교관과 해외 정상은 물론 오바마 행정부에 사사건건 발목을 걸던 공화당 의원까지 탄복하게 만들었다. 당시 갤럽 여론조사에서 그에 대한 호감도는 68%에 달했다.

하지만 대통령 출마 선언 후 유세장에 선 그는 다르다. 한순간에 사람들을 매료시키던 카리스마는 간 데 없고 방어적이고 경직돼 있다. 뭔가 숨기려 한다는 인상을 주는 후보에게 유권자들이 공감할 리 없다.

“행정가와 선거운동가(campaigner), 정치가로서의 힐러리는 완전히 다르다.” 블룸버그뉴스의 국무부 담당으로 8년 동안 클린턴을 취재한 인디라 라크쉬매넌의 말이다. 그는 지난 4월 폴리티코 매거진의 ‘두 개의 힐러리의 미스터리’라는 기사에서 이를 다뤘다.

클린턴 자신도 스스로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최근 유권자와 가진 한 타운홀미팅(town hall meeting)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 유세에서 하는 연설은 시(poetry)다. 하지만 나는 아닌 듯하다”고 부러운 듯 말했다.

그러면 그의 강점은 뭘까. 라크쉬매넌에 따르면 클린턴은 어떤 직위나 일을 찾아내고 만들어 성취하는 것보다 할 일이 주어졌을 때 훨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문제는 본선에서 맞붙을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온갖 수단을 다해 사람들을 홀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선동가라는 사실이다. 이번 대선은 클린턴이 ‘정치가 클린턴’의 약점을 얼마나 극복하느냐에 달렸다는 게 라크쉬매넌의 결론이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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