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가 오는 5일(이하 현지시간) 일을 하지 않고도 일정 소득을 보장해주는 ‘기본소득(basic income)’ 제도 도입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워낙 파격적인 내용인 데다 핀란드와 네덜란드에서도 도입 움직임이 있어 이목을 끈 제도다. 하지만 도입 반대 여론이 더 높아 ‘일장춘몽’으로 끝날 것이란 관측이 많다.
2일 기본소득 찬성파 홈페이지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나온 지난 4월 중순 여론조사(UBI)에서 도입 반대가 50%로 찬성(33%)보다 훨씬 많았다. 같은 달 다른 조사(SRG)에서는 반대가 72%였고 찬성은 24%에 그쳤다. 그 사이 여론 변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로선 통과되기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투표에 부쳐지는 기본소득안은 모든 성인에게 한 달에 2500스위스프랑(300만원)을 주는 내용이다. 2500스위스프랑 미만 소득자에게만 지급하고 그 이상 벌면 안 준다. 미성년자에게는 650스위스프랑(78만원)을 준다.
이번 투표는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2013년 10월에 국민투표 실시 요건(10만명) 이상의 지지서명을 받아 정부에 제출하면서 실시하게 됐다. 진보계 인사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자며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또 로봇 도입 등으로 갈수록 실업자가 많이 생길 것이란 이유도 내세웠다.
이런 제안이 나온 것은 스위스가 1인당 국민소득이 8만2000달러(9700만원)에 달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나라이기 때문이다. 찬성론자는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폐지하면 기본소득을 지급할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보수인사도 복잡한 사회보장제도를 폐지하면 ‘작은 정부’ 구현이 가능하다면서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하지만 반대론자는 근로의욕을 현저히 저하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청소나 판매 매장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가 줄어 이런 인력을 구하려면 2500스위스프랑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찬성론자는 이런 지적에 “빈곤과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반박한다.
미국 인터넷매체 뉴스맥스에 따르면 핀란드와 네덜란드도 비슷한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핀란드는 모든 국민에게 월 800유로(106만원)를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고, 네덜란드는 일부 지자체에서 전체 시민에게 월 900유로(119만원)를 지급하려 한다. 브라질의 좌파 정부가 도입해 시행 중인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도 기본소득 개념과 비슷하다. 이는 빈곤층 가정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조건으로 정부가 일정액의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일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안이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한 데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31일 “찬성론자들이 인간다운 삶이란 명분만 앞세웠지 논의의 수준을 현실에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월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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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월300만원 기본소득… ‘빈곤퇴치’ 이상과 현실 사이
입력 2016-06-0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