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학도 양자령… ‘천재 골퍼’ 영광 재현 채비

입력 2016-06-03 04:02 수정 2016-06-03 17:51
양자령이 올 4월 미국 하와이 오아후 코올리나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 1번홀에서 힘차게 샷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고교 시절인 2010년 4월 영국 칼리지컵에서 여학생으로는 대회 처음 우승을 한 뒤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미국여자골프(LPGA) 투어에서 최근 3개 대회 연속 우승컵을 들어올린 에리야 주타누간(21·태국) 열풍이 거세다. 그런데 주타누간이 주니어 때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선수가 있다. 바로 한국의 양자령(21·SG골프)이다. 학업과 골프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양자령이 과거 ‘소녀 천재골퍼’의 영광을 재현할 채비를 하고 있다.

양자령은 네 살 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태국으로 건너갔고, 여섯 살 때 골프채를 잡았다. 처음 공식대회에서 92타를 쳤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드라이버로 242야드를 날려 일약 소녀 천재골퍼로 이름을 떨쳤다. 전 세계 아마추어대회에서 76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주타누간은 단 한 번도 양자령을 이기지 못했다. 국내에선 2005년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태국에 사는 천재 골프소녀’로 처음 소개됐다.

하지만 양자령은 또래인 주타누간이나 김효주(21·롯데) 백규정(21·CJ오쇼핑)과 다른 길을 걸었다. 여느 선수들이 그랬듯 일찌감치 공부를 놓고 골프에 전념하는 대신 골프와 학업을 병행했다. 잠시 한국으로 돌아와 경기도 남양주 광동중에서 공부했던 양자령은 14살이던 2009년 스코틀랜드의 명문 중학교 로레토 스쿨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골프의 발상지인 그곳에서 양자령은 낮에는 공부를, 저녁엔 골프채를 잡았다. 이듬해엔 남녀가 같이 출전하는 칼리지컵에서 남학생들을 꺾고 대회 최초로 여학생 우승 기록을 남겼다. 또 예선전을 통과해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최연소로 참가했다.

주변에선 프로로 전향하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양자령은 공부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 대학을 들어가 1년 만이라도 공부하고 싶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이에 한국으로 돌아와 광동고를 2년 반 만에 조기졸업하고, 훌륭한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성적으로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금융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곳에서 3학년 1학기까지 학점 4.0 만점에 3.8점을 받을 만큼 공부도 특출 나게 잘했다.

학업을 어느 정도 완성한 양자령은 지난해부터 프로 문을 두드렸다. 지난해 LPGA 퀄리파잉스쿨에선 21위로 풀카드를 놓치고 조건부 시드 1번을 받아 12개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올 시즌 퀄리파잉스쿨에 재도전해 10위의 성적을 내며 풀시드를 획득했다. 한국 선수 가운데 올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한 선수는 양자령이 유일했다. 성적도 괜찮다. 지난 2월 코츠 챔피언십에선 최종 합계 7언더파 281타로 수잔 페테르센 등과 함께 공동 6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양자령은 1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어필드 그린밸리골프장에서 열린 US여자오픈 퀄리파잉 페어필드 지역 예선 최종전에서 2라운드 합계 1언더파를 쳐 2위로 US여자오픈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이제 양자령의 눈은 US여자오픈에 쏠려 있다. 때마침 이 대회가 열리는 7월 8일은 양자령의 생일이다. 자신의 생일에 주니어 시절 항상 이겼던 주타누간과 돌고 돌아 대결을 펼친다. 학업과 운동 모두 1등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양자령은 “어린 시절 골프 신동이라는 타이틀은 잊고 신인의 마음으로 골프에 임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