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서 치료비 타려고 노숙인 입원시킨 정신병원

입력 2016-06-02 18:45
서울역 노숙인 A씨는 2014년 경북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오랜 노숙생활에 지쳐가던 때였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일자리도 구할 수 있다’는 동료의 경험담이 솔깃하게 들렸다. 동료가 건넨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더니 병원에서 승합차를 보내 데리러 왔다.

A씨는 알코올에 의존해서 지내긴 했지만 조현병(정신분열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신과 문턱을 넘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정신병원 입원에는 문제가 없었다. A씨는 “정신병원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유롭게 병원을 드나들 수 있었고 농번기에는 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은 적은 없었다. 매일 알약을 복용하긴 했는데 비타민인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같이 노숙인을 유인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보호·관리를 소홀히 한 정신의료기관 6곳에 대해 개선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고 2일 밝혔다. 또 정신의료기관이 위치한 각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지도·감독 강화와 불법행위에 대한 행정처분을 권고했다.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실태조사를 통한 개선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앞서 인권위는 노숙인 인권보호 단체의 제보와 진정 등을 바탕으로 지난해 5∼7월 경북, 경남, 충남 소재 정신의료기관 6곳에 대한 방문조사를 실시했다. 노숙인에 대한 정신병원 입원 유인, 이들에 대한 치료 소홀, 부당한 입퇴원 관리실태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정신의료기관들이 서울이나 대도시 역 주변에서 노숙인 등을 직접 섭외·유인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사실이 확인됐다. 노숙인 등에게 의료비를 실질적으로 면제해주고 입원을 유지시켰고,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입원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외 노동이나 원내 음주를 방치하고, 무단 외출·외박을 허용한 사례도 조사됐다.

인권위는 “병원들이 경영상의 이유로 입원 환자를 유치하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의료기관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입원하면 본인부담금 없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입원치료비를 지급받을 수 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