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1시. 300여개의 의자가 깔린 공연장에 20∼30대 청년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자리에 앉은 청년들은 저마다 책상 위에 노트북,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키보드, 노트 등을 펼쳐놓은 뒤 무대를 응시했다. TED(다양한 분야의 연사들이 지식을 공유하는 강연 프로그램) 무대를 연상시키듯 핀마이크를 착용한 김명진(55) 목사가 입을 열었다.
“‘요즘 부쩍 피곤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왔네요. 헐. 여러분, 많이 자면 피곤이 풀리나요? 많이 자는 것은 죽는 연습을 오래하는 겁니다. 영어 레크리에이션은 다시 창조함을 통해 회복이 이뤄짐을 뜻해요. 내가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세요. ‘피로가 뭔가’ 싶을 겁니다.”
서울 동대문구 빛과진리교회(김명진 목사)의 토요성경공부 모습이다. 이날 김 목사는 ‘기독교에는 왜 이렇게 교단이 많나요?’ ‘예정론이 뭔가요?’ 등의 질문을 놓고 청년들과 자유롭게 대화했다. 참석자들은 빛과진리교회에 출석한 지 3개월이 채 안 된 새신자들이다. 4시간여 진행되는 성경공부엔 지루함이 없었다. 김 목사의 재치 있는 설명에 개그 프로그램 녹화장처럼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같은 시간 교회 본당에서는 소그룹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테이블 두세 개를 나란히 붙여놓고 빙 둘러앉은 청년들은 로마서 12장을 ‘크리스천의 올바른 삶’에 적용해 본 일주일을 공유했다. ‘수업시간에 졸지 않은 일’부터 ‘몸이 안 좋은 직장 선배를 위해 대신 업무를 처리해 준 일’ 등 신행일치의 고백이 이어졌다.
빛과진리교회는 출석성도 2000여명 중 1700여명이 청년인 말 그대로 ‘청년교회’다. ‘가나안 성도’ ‘다음세대의 신앙위기’ 등 위기론이 물밀 듯 터져 나오는 시대에 교인의 절대다수가 청년인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김 목사와 인터뷰를 위해 빛과진리교회 목양실을 찾았다. 목양실 팻말이 적힌 문을 열자 당구대가 눈에 들어왔다. ‘잘못 들어왔나’ 싶었다.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김 목사의 뒤편 책장엔 신학 서적들과 함께 축구공과 농구공들이 열을 맞추고 있었다.
김 목사는 “권위를 뺀 공간에 자유를 채워 넣은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빛과진리교회에선 통상적인 직분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이에 상관없이 장로·권사·집사 대신 형제·자매가 쓰인다. 심지어 김 목사도 ‘목사님’ 대신 ‘MJ(명진)’로 불린다. 1995년 개척 당시부터 청년들과 매일 대학 캠퍼스에서 농구 전도를 할 만큼 농구를 좋아해 MJ가 마이클 조던의 약자인 줄 알고 있는 청년도 있다.
교회엔 젊은 문화가 가득하다. 교회 주차장 대신 만들어진 농구 경기장, 프랜차이즈 카페 못지않은 150석 규모의 카페, 스터디룸, 댄스연습실, 문화공연장 등에서 일주일 내내 청년들이 함께 땀 흘리고 삶을 나눈다. 그 바탕은 말씀이다.
빛과진리교회 성도들은 새벽기도회 대신 매일 오전 6시 ‘경건의 시간’을 갖는다. 교회가 먼 성도들은 10여개의 대학 캠퍼스, 직장 근처, 가정 등지에서 그룹별로 모여 동참한다. 단순히 성경 묵상에 그치지 않고 소그룹 리더를 중심으로 성경적 가치관이 중심이 된 하루를 계획하고 실행방향을 공유한다.
“모태신앙이었지만 대학생이 된 뒤 술과 세상문화에 빠져 교회와 멀어졌다”는 이지윤(31) 자매는 “20년 동안 ‘교회엔 내 삶의 답이 없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 빛과진리교회에 오면서부터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성적, 대입, 스펙, 취업 등 단기적인 목표에만 매몰돼 있었는데 지금은 ‘언제 어느 자리에 있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란 인생목표가 생겼다”며 웃었다.
청년들의 삶이 변하자 부모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교회 내 장년 300여명은 대부분 청년 성도들을 따라 출석한 성도들이다. 김원봉(63) 형제는 “탕자 같던 아들이 빛과진리교회를 통해 회심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며 “전에는 아들과 10분도 대화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형제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청년들이 자신들을 위한 공간과 문화를 교회 내 기성세대가 용납하지 않는다고 여긴 채 아웃사이더가 되는 게 현실”이라며 “청년들의 언어와 문화, 생각을 사랑하고 동행하면 모이지 말라고 해도 모인다”고 강조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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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0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