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서울 사직로 영락농인교회 목양실. 이영경(50) 사모가 남편 김용익(53) 목사에게 문을 열고 다가갔다. 김 목사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 사모가 형광등 스위치를 껐다 켰다. 그제야 김 목사가 환한 얼굴로 사모를 맞았다.
김 목사는 청각장애인이다. 김 목사에게 이 사모가 “오늘 설교 준비는 다 됐느냐”고 물었다. 수화(手話)였다.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으로 묵상 중인데 하나님이 지혜를 안 주시네요.” 부부는 ‘소리 없이’ 크게 웃었다.
이 사모는 KBS 뉴스 등 방송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는 비장애인 수화통역사다. 대학 유아교육학과를 다니던 중 수화 동아리에 가입한 것이 계기가 돼 직업이 됐다.
“청각장애인 중에서도 1∼2급, 농아인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수화를 사용합니다. 이들은 수화라는 언어를 가진 소수민족이에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농아인이 수화가 아닌 필담이나 구화를 하는 모습은 현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 사모는 “소리를 미약하게나마 들을 수 있는 청각장애인은 구화 사용이 가능하지만 전혀 듣지 못하는 경우엔 구화 습득이 어렵다”고 했다.
농아인의 모국어는 수화다.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한국어는 이들에게는 영어와 같은 외국어인 셈이다. 농아인이 한글을 모르는 건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농아인은 책도 볼 수 없다. 글을 모르니 글에 담긴 문화도 알 수 없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관람했을 때였다. 일반 관객들은 ‘쟤 머리에 꽃 달았대’란 대사에서 빵 터졌다. 꽃을 달았다는 것이 미쳤다는 의미를 모르는 농아인들은 함께 웃지 못했다.
비장애인은 농아인이 게으르다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농아인의 비장애인인 자녀들도 한글을 모르는 부모를 무시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 사모는 “너 영어 잘 알아? 네가 영어 모르는 것과 똑같아. 그렇지만 너희 부모는 수화를 제일 잘하잖아”라고 자긍심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이 사모도 수화를 배우기 전에는 청각장애인에 대해 잘 몰랐다. 수화를 배우고 나자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농아인이 더 눈에 띄었다. 대학 4년 내내 주말이면 농아인 보육원인 인천성동원에서 봉사했다.
수화를 더 잘하기 위해 농아인교회로 옮기기도 했다. 이때 중고등부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던 김 목사를 만났다. 만난 순간부터 서로 반했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게 됐다.
“그냥 사귀어보다 아니면 헤어져야지. 그런 마음으로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4대째 기독가정이지만 부모의 허락은 쉽지 않았다. 부모는 결혼을 가족회의에 부쳤다. 첫 번째 회의 때는 두 오빠까지 반대해 부결됐다. 두 번째 가족회의 때는 “평생 존경할 사람이고 이런 사람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가 기도하셨다. 주께서 쓰겠다 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가족의 만장일치로 1990년 10월 결혼했다. 이들도 부부싸움을 한다. 그러나 얼굴을 보고 말해야 하기 때문에 싸움이 오래가지 못한다.
이 사모는 쓰임 받는다는 게 감사해 농아인의 요청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방송에서 뉴스 통역을 하고, 자장면 배달 등 잔심부름을 해주기도 했다. 항상 농아인과 함께 있었다.
2015년 12월 드디어 국회에서 수화가 언어로 인정됐다. 그러나 농아인 학교에서조차 수화가 아닌 구화 교육을 하고 있다. 대부분 어릴 때 열병을 앓고 난 뒤 장애를 갖게 되는 농아인은 구화를 할 수 없다. 이 사모는 농아인의 언어인 수화로 유치원 교육부터 시작하는 대안학교를 세우는 게 꿈이다.
이 사모는 “수화는 손만 움직이는 언어가 아니고 얼굴 표정, 온몸으로 말하는 언어”라며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수화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한국인이 수화를 배워 청각장애란 영역이 사라지는 세상이 오길 꿈꿔본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
비장애인 수화통역사 이영경 사모 “농아인은 세상의 땅끝입니다”
입력 2016-06-03 20:40 수정 2016-06-16 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