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소금에 절인 생선으로 5000명 이상을 먹이신 ‘5병2어의 기적’ 이야기는 복음서 모두에 전승돼 있습니다. 빈들에서 날이 어두워지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먹을 것을 사러’ 보내야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고쳐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안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말씀해야 했습니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빵이 얼마나 되느냐?” 그때에야 비로소 제자들은 문제가 먹을 것을 사서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려는 것임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사다’와 ‘나누다’의 차이입니다. ‘사다’와 ‘나누다’의 대립은 한편으로 오직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배고플 때, 빵을 사먹을 수 있는 이른바 시장의 자유와 평등의 허위를 폭로하고, 교환가치와 매매관계에 근거한 사회적 질서를 뒤집어 놓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비록 적은 것일지라도 함께 나눌 때 기적은 가능하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기적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라고 풀이합니다. 죽은 사람이 부활했다면 이것은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적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지구상에 먹을 것이 충분한데도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1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것도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니 기적보다 더 기적적인 일입니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사슨 교수에 따르면 세계 모든 나라들의 국내총생산(GDP) 총액은 30조 달러이고 전 세계의 수출입액은 8조 달러에 지나지 않는데, 2000년 기준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는 돈은 300조 달러라고 하니 도대체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262조 달러는 어디에 숨어 있기에 전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합니까. 게다가 한 나라의 운명은 물론 개인의 목숨까지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면 이것도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니 기적보다 더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른바 선진 경제와 첨단 기술은 인류의 해방과 평등이 아니라, 시카고 대학 사회학 교수인 사센에 따르면 오히려 ‘축출의 메커니즘’을 만들었습니다. 축출은 배제나 소외보다 더 심각한데, 소외된 사람이나 대상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만든 과학적 금융 도구가 ‘지옥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독일 여성 건축가 케네디는 “우리 시대의 금융 시스템은 지금까지 그 어떤 전쟁보다, 그 어떤 환경의 곤궁보다, 그리고 그 어떤 자연재해보다 많은 죽음과 빈곤 문제를 낳고 있다. 이 시스템은 실제로 거의 모든 전쟁의 뿌리이고 수많은 대립과 사회 붕괴의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돈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 차원에서 우리들 자신의 참된 변화라고 강조합니다.
돈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돈이 되는 일이면 사람의 생명도 파괴하는 현실, 재물이 있는 곳에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말씀이나, 하나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말씀도 돈이 영적인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정신을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정신 개혁이 시스템 개혁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시스템 개혁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시스템이 제공하는 무관심과 무책임이라는 알리바이 뒤에 숨어 있는 현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채수일 경동교회 담임목사
[바이블시론-채수일] 시스템보다 정신개혁
입력 2016-06-02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