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준엽] 예사롭지 않은 화웨이 도발

입력 2016-06-02 18:56

샤오미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격을 앞세워 인기를 끌 때 ‘찻잔 속 태풍’이 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제대로 된 기술도 별로 없이 남의 것을 베껴서 싸게 만들었다는 ‘짝퉁’ 이미지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기술 장벽에 부닥친 샤오미의 존재감은 눈에 띄게 줄었고, 선진국들과 중국과의 격차는 여전히 벌어져 있다고 보는 시각이 유효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중국 기업이 다 샤오미 같은 건 아니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 못지않게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중국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화웨이다. 화웨이는 통신장비부터 스마트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는 통신기업이다. 국내에도 LG유플러스를 통해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을 팔고 있다.

화웨이는 지난해 매출 중 15.1%를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액수로는 596억700만 위안(약 10조7400억원)에 달한다. 전체 직원의 45%인 7만9000여명이 R&D 관련 인력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4조8000억원을 R&D 투자비용으로 집행했다. 매출 비중으로는 7.4%다. 액수는 삼성전자가 많지만 매출 비중으로는 화웨이가 더 높다. 지금처럼 투자 비중을 유지한다면 매출 규모에 따라 화웨이가 삼성전자보다 더 많은 금액을 쓸 수도 있다는 얘기다.

화웨이가 최근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특히 그동안 특허 소송에서 늘 소송을 당하는 쪽이었던 중국 기업이 특허를 주장하는 쪽이 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화웨이는 기술력으로는 전혀 뒤질 게 없다고 자신만만해한다. 화웨이는 “5년 안에 삼성, 애플을 뛰어넘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세계 1, 2위 스마트폰 업체를 뛰어넘으려면 기술력뿐만 아니라 브랜드파워도 필요하다. 화웨이의 소송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라고 보는 이유다.

화웨이가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나라 기업이 1980, 90년대 일본의 일류 기업을 따라잡으려고 걸어왔던 길과 유사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소니, 파나소닉 등이 내놓은 가전제품과 비슷한 걸 더 싸게 만들어 시장에 자리를 잡고, 그다음 단계로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해 왔다. 2000년대 중반부터 주도권을 잡기 시작해 이제는 명실상부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각종 소송, 반덤핑 제소 등의 문턱도 넘어야 했다.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대상이었던 일본 기업들은 그 사이 쇠락했다.

화웨이와 삼성전자의 소송이 어떻게 끝날지 예단할 수는 없다. 삼성전자는 맞소송 방침을 천명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고민이 많다. 소송이 진행되는 것 자체가 화웨이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쪽이 적정한 수준에서 화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어떤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화웨이가 예전보다 우리에게 더 강력한 경쟁 상대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나라 기업은 앞으로 5∼10년 후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야 할 때다. 지금 잘하는 분야에서 앞으로도 경쟁 우위에 있다면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우리나라 기업이 잘하는 분야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적합하다. 거대한 시장,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 많은 인재를 보유한 중국 기업에 장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어쩌면 중국 기업보다 경쟁 우위에 있는 앞으로 몇 년이 우리가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일지 모른다. 경쟁의 틀을 달리할 새로운 성장동력이 절실한 때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