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독일 루지는 2012년 2월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올림픽 금맥을 이어갈 만한 ‘신성’을 발굴했다. 체코와 국경을 맞댄 독일 동부 에르츠산맥의 알텐베르크 출신 산골처녀. 막 스무 살이 돼 주니어 시즌을 마감한 아일렌 프리쉬였다. 프리쉬는 이 대회 여자 1인승과 팀 릴레이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2관왕을 달성했다.
올림픽마다 금·은·동메달을 모두 쓸어 담은 세계 최강. 지금까지 44개의 올림픽 금메달 중 31개를 가져간 절대강자. 적어도 루지에서 독일 최강은 세계 최고로 통한다. 독일 주니어 국가대표로 세계를 정복한 프리쉬의 앞날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해 11월 루지 월드컵에서 시니어로 데뷔했다.
프리쉬의 목표는 오직 올림픽이었다. 많은 루지클럽들의 입단 제안을 뿌리치고 고향 명문 클럽 SSV 알텐베르크를 선택한 이유도 국가대표로 성장하기 적합해서였다. 루지 바이애슬론 스켈레톤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 산악자전거 등 에르츠산맥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산악스포츠부터 축구 양궁 탁구까지 다양한 종목을 운영하는 이 대형 클럽에서 프리쉬는 꿈을 향해 한걸음씩 걸어갔다.
하지만 시니어 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더욱이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독일 시니어에서 국가대표 경쟁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치열했다. 한국의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처럼 독일에서 루지 국가대표 자격을 얻는 과정은 올림픽 본선보다 어려웠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선 시즌 내내 열리는 월드컵에 꾸준히 출전해 일정한 성적을 수확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대표 합류조차 어려운 독일에서 국제대회 출전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프리쉬의 시니어 최고 성적은 2013년 독일선수권대회 여자 1인승 동메달. 그나마 유일한 메달이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 도전은 그렇게 좌절됐다. 프리쉬는 한 시즌을 더 소화하고 지난해 은퇴했다. 스물세 살. 선수인생을 끝내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런 프리쉬에게 손을 내민 곳은 썰매(루지·봅슬레이·스켈레톤) 종목의 변방이자 루지 월드컵 출전 경험조차 일천한 한국이었다. 대한루지연맹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귀화 선수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프리쉬를 발견했다.
연맹은 프리쉬가 비록 독일에선 실패했지만 세계적 경쟁력을 가졌다고 판단하고 2015-2016 시즌의 상반기인 지난해 하순 내내 귀화를 설득해 결심을 받아냈다. 프리쉬 역시 올림픽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만큼 이 제안을 수락했다. 대한체육회는 1일 공정위원회 특별 심사를 통해 프리쉬의 귀화를 승인했다. 이제 남은 절차는 법무부 심사다. 한 달 가량의 심사에서 우리 국적을 얻으면 국가대표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루지는 개인기량만큼이나 트랙 적응력이 중요하다. 프리쉬는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루지 강국 선수들보다 2년가량 평창 트랙을 먼저 경험할 수 있는 만큼 올림픽 금메달이 그저 막연한 도전이 아니다.
연맹 관계자는 “독일 국가대표 선발전 4위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지만 다른 국가에선 정상급 선수다. 프리쉬는 바로 그런 선수”라고 말했다. 이어 “올림픽에 많은 꿈을 가졌던 선수인 만큼 한국 루지를 한 단계 발전시킬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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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01 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