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네 편을 묶은 책이다. 에세이 한 편의 분량은 10페이지도 안 된다. 보통 시집의 절반 두께쯤 되는 60페이지짜리 책. 이 얇은 책은 작가가 올리버 색스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출판사는 이 얇은 책을 일반판과 특별판, 2종으로 출간했다. 일반판은 6500원, 영어 원문을 수록하고 삽화를 넣고 하드커버를 입히고 실로 제본한 특별판은 2만6000원이다. 색스의 마지막 책이라는 의미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시도였을 것이다.
색스는 2014년 회고록 ‘온 더 무브’를 출간했고 그 해 연말 희귀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여덟 달을 더 산 뒤 지난해 8월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색스는 뛰어난 뇌신경학자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의학작가였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뮤지코필리아’ 등 10여권을 책을 남겼는데, 그의 모든 책이 국내에도 번역돼 있다. 번역가 김명남은 “질병의 의학적 드라마와 인간적 드라마를 하나로 엮어 인간 존재의 특수하고 보편적인 측면을 동시에 보여주었다”고 색스를 평가했다. 그의 글들은 솔직하고 유려하며, 휴머니즘과 유머가 가득했다.
여기 실린 ‘수은’ ‘나의 생애’ ‘나의 주기율표’ ‘안식일’ 등 네 편의 에세이는 그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쓴 글들이다.
“나로 말하자면 내가 사후에도 존재하리라는 믿음이(혹은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다. 그저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길 바라고, 내가 죽은 뒤에도 내 몇몇 책이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기를’ 바랄 뿐이다.”
“죽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 대체될 수 없다. 그들이 남긴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마다 독특한 개인으로 존재하고, 자기만의 길을 찾고,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자기만의 죽음을 죽는 것이 우리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기 때문이다.”
여든이 넘어 쓴 그의 글이 죽음을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색스는 이 얇은 책에서 죽음과 질병,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놀랍도록 원숙하고 우아한 생각들을 보여준다. 이 책은 30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이 얇은 책으로 색스를 처음 만나게 된 독자들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김남중 기자
[책과 길-고맙습니다] 죽음과 질병, 늙어감에 대한 성찰
입력 2016-06-02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