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구조조정 <4>·끝] 뼈 깎고 살 도려내 정상화시켜라… 문책은 그 다음

입력 2016-06-01 18:22 수정 2016-06-02 10:35
현대상선이 1일 서울 종로구 현대상선 사옥에서 연 사채권자 집회 후 한 개인투자자가 로비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이틀간 열린 집회에서 내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8042억원 규모의 공모사채에 대한 채무재조정을 100% 완료했다.뉴시스

현재 조선 및 해운업계에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구조조정으로 혈세를 투입할 수밖에 없게 된 과정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부실의 상징으로 부각된 대우조선해양의 방만한 경영의 원인을 파헤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수술하지 못한 채 부실을 방조하고 오히려 심화시킨 국책은행과 정부, 회계법인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조선 1위 현대중공업은 2014년 상반기 1조292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삼성중공업 역시 상반기 100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빅3’ 중 유일하게 같은 기간 183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공시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부문 손실 충당금을 선반영해 ‘어닝쇼크’를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감사를 맡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올해 3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손실 5조5000억원 중 2조원이 2013∼2014년에 반영됐어야 한다고 뒤늦게 정정을 요구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뒤에는 이처럼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관리 부실, 단기성과에 집착한 경영진의 과욕, 이를 감시해야 할 회계법인의 잘못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1999년 대우그룹이 무너진 후 2000년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 호황을 타고 성장을 거듭했고, 산업은행은 배당 수익과 함께 연결 실적 개선 효과를 봤다. 2008년 매각을 추진해 한화그룹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새 주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주인 없이 장기간 회사가 운영되면서 정권 입맛에 맞는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조직 기강 역시 무너졌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우조선해양은 주인 없는 기업들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관련 문제가 복합적으로 드러난 경우”라며 “전문성 없는 낙하산들, 권한 있고 책임지지 않기 위해 임기만 채우려는 경영진의 행태가 오늘날의 사태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컨트롤타워 없이 국책은행이나 채권단에만 의존하는 분위기 역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한 조선업은 2008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해 STX조선, 성동조선, 한진중공업, SPP 조선 등 7개사가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달 25일 산업은행과 NH농협은행 등 채권단이 실무자 회의를 개최해 한때 세계 4위였던 STX조선해양을 법정관리하기로 합의하는 등 문제만 더욱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건데 현재 조선업 구조조정은 한 달 넘게 국책은행 자본 확충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어 앞뒤가 안 맞다”고 밝혔다.

책임 소재에 앞서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쳐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책은행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책임을 무는 것을 전제로 구조조정을 한다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며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이나 그 이후에 관리가 제대로 안 된 부분을 확인하고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도 “낙하산 등의 문제가 분명히 있지만 해양플랜트 부실이 이 정도로 커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며 “지금은 어떻게 빨리 정상화시킬지가 우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한득 연구위원도 “부실의 규모를 파악한 뒤 구조조정을 수행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구조조정 시 고통과 마찰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도 당면 과제다. 김진근 경남발전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구조조정 와중에 일자리를 잃는 이들은 협력업체 직원과 다수 기능직 직원들”이라며 “특별고용업종 지정 등 실업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면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채권전략팀장은 “정치권에서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 가면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력 감축이 필요한데 사회적 안전망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현길 천지우 최예슬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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