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아 좀만 참아라’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파이팅’….
31일 오전 8시 경기 김포시 옹정리에 위치한 팬택 협력업체 ‘현대 하이넷’ 공장. 2층 한편에 마련된 이수인(46) 팬택 생산기술팀 부장의 책상엔 이런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 여러 개가 붙어 있었다. 무슨 문구인지 묻자 이 부장은 기자에게 대뜸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2년 전 출시된 팬택의 ‘시크릿노트’ 폰에는 6명의 팬택 직원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2014년 8월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생산기술팀 직원들과 김포공장 옥상에서 찍은 것이다.
1996년 대학 졸업 직후 팬택에 입사해 20년째 일하고 있는 이 부장은 “사진 속 6명 중 2명이 회사를 나갔고, 2005년 150여명에 달했던 팀원은 현재 13명밖에 안 남았다”고 했다. “나만 살아남았다. 떠나간 동료들이 보고 싶다”던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1991년 설립된 팬택은 초기 무선호출기(삐삐)를 만들어 팔았다. 2010년 국내 최초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출시했고,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시장상황 악화로 2007년과 2014년 두 차례 법정관리를 겪었고, 두 번의 워크아웃도 거쳤다. 지난해 5월 법정관리 폐지 신청을 하며 파산 직전에 몰렸지만 지난해 12월 쏠리드-옵티스 컨소시엄에 극적으로 인수돼 ‘뉴팬택’으로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매출 없이 막대한 고정비만 투입되면서 자금 상황이 나빠졌다. 3차례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지난해 9월 직원 900여명 중 400여명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단행한 팬택은 지난 4월 500명의 인력을 330여명으로 다시 줄였다. 2000년대 초반 3000여명에 달하던 직원 중 10%만 남은 셈이다. 팬택 이용주(46) 차장은 “눈을 뜨고 회사에 오면 사람이 점점 사라졌다”며 “손발이 잘리는 기분이다. 여름인데도 사무실이 너무 춥다”고 했다.
남은 직원들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본사와 성남·용인·김포·평택 등 협력업체가 운영하는 공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1999년 신축돼 1000여명의 직원이 일하던 팬택의 김포공장도 주인 없는 곳이 됐다. 팬택 박창현(42) 과장은 “현대 하이넷 공장에서 불과 5분 거리라 가끔 들르면 황폐하게 수풀로 우거져 있다”며 “프리미엄 제품인 베가(VEGA) 시리즈가 출시될 때, 밤을 새워도 즐거웠던 그때가 떠올라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떠난 이에 대해 남은 이가 느끼는 건 ‘책임감’을 넘어 ‘죄책감’이다. 이수인 부장의 팀원 중 하나는 회사를 나가 현재 직업이 없다. 한 명은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치킨 집을 열었다 망한 사람도 있다. 팬택 연봉의 반도 안 되는 회사를 다니며 근근이 사는 이도 많다. 김포 협력업체로 출근하는 팬택 직원들은 공장 근처 해물탕집에 자주 간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나간 직원이 차린 식당이다. 이용주 차장은 “미안해서 자주 갈 수밖에 없다. 이걸로 갚을 수 있을진 모르지만…”이라며 말을 흐렸다.
현재 팬택 직원들은 이달 말 출시될 스마트폰에 사활을 걸고 있다. 1∼2시간 일찍 출근하고 야근도 자처한다. 회사는 실적이 좋아지면 해고된 이들을 우선 채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직원 모두 ‘내가 열심히 하면 동료를 다시 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뛰고 있다. 신제품 브랜드는 스카이(SKY)로 정했다. 팬택이 인수한 SK텔레텍이 1998년 선보인 휴대전화 브랜드명이다. 그때와 같은 성공을 이루자는 다짐이다. 모델명은 ‘IM-100’이다. ‘아임백(I’m back)’이라는 의미를 담아 팬택의 회생과 함께 ‘동료를 돌아오게 할 제품’이라는 뜻이다.
현대 하이넷 공장은 KT에 납품할 제품 2000여대의 마무리 조립에 분주했다. 오는 9일부터는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팬택의 신모델은 30만원대의 중저가 모델이다. 퀄컴 스냅드래곤 430 시스템온칩(SoC) 프로세서, 안드로이드 6.0 마시멜로 운영체제(OS) 등을 탑재했다. 팬택 관계자는 “20년간 쌓아온 팬택의 역사와 기술이 집약된 제품이어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며 “팬택의 재기는 IM-100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사진=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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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7전8기 재기 성공… 떠난 동료들 꼭 다시 데려올 것”
입력 2016-06-02 04:02 수정 2016-06-02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