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놈·맞힌 놈·거친 놈… MLB 불문율, ‘놈3’ 응징

입력 2016-06-02 04:07
①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바티스타가 지난해 10월 15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5차전 당시 7회 쐐기 스리런 홈런을 친 뒤 거만한 표정으로 방망이를 집어던지고 있다. ②5월 16일 텍사스전에서 바티스타가 상대 투수 맷 부시로부터 위협구를 맞고 있다. ③바티스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2루수 오도어에게 거친 태클을 하고 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트위터, 엠스플 뉴스 영상 캡처

‘건방진 놈, 거친 놈, 맞힌 놈은 반드시 보복한다!’

세계 최고의 야구무대 미국 메이저리그(MLB)에는 이런 불문율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야구는 결코 거친 스포츠가 아니다. 서로 편을 나눠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니 서로 몸을 부딪힐 일도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직업 프로야구의 세계를 잘 들여다보면 야구만큼 거친 스포츠도 없다.

지난달 16일 MLB를 들석거리게 했던 루그네드 오도어(22·텍사스 레인저스)와 호세 바티스타(36·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난투극은 바로 이 불문율이 화근이었다. 그날 경기 당시 바티스타가 6회초 3타점 2루타를 치면서 양팀 선수들의 감정이 고조됐다. 바티스타가 ‘지나치게’ 기뻐하는 몸동작을 한 것이다. 바티스타는 늘 ‘배트플립(빠던·배트 던지기)’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선수다. 특히 그는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 5차전에서 텍사스를 상대로 토론토 승리를 결정짓는 홈런을 터트린 후 거만한 표정으로 배트를 집어던져 텍사스의 공적이 됐다.

텍사스 투수 맷 부시는 그런 바티스타를 이날 경기 8회초에 빈볼(위협구)로 강타했다. 몸에 맞는 볼로 걸어나간 바티스타는 2루 주루과정에서 텍사스 2루수 오도어를 향해 누가봐도 ‘규정위반’인 슬라이딩 태클을 가했고, 이에 오도어는 참지 못한 채 바티스타의 턱을 향해 MLB 사상 강력한 핵펀치 훅을 날린 것이다. 양팀 선수들은 모두 뛰어나가 서로 치고 받으며 벤치 클리어링을 벌였다.

바티스타도 이 난투극이 서로간의 묵은 감정 때문이라고 시인했다. 그는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와의 인터뷰에서 “내 슬라이딩이 거칠었던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전에 자신에게 날아온 빈볼에 대해 불평을 쏟아냈다. “그럼 거꾸로 그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명백한 위협구를 맞았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나. 감독에게 ‘내가 투수로 나가겠다’고 해야 하나”라고 말한 것이다. 불문율 때문에 감정이 상한 대가로 오도어는 7경기, 바티스타는 1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각각 받았다.

MLB는 경기의 결과보다 경기의 불문율을 더 따지는 걸로 유명하다. 불문율의 대상은 신사적 페어플레이를 방해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모든 행동이다. 미국 스포팅뉴스는 그런 불문율 중 대표적인 5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점수 차가 많이 났을 때 도루하거나 번트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상대투수가 노히터 같은 대기록을 세우고 있을 때도 기습번트 금지다. 세 번째는 홈런을 치고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타구를 오랫동안 응시해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다. 배트를 집어던지는 빠던도 여기에 해당한다. 네 번째는 반드시 부당한 행동은 보복하라는 것이다. 한 팀이 고의로 우리 팀 타자를 맞추면 우리도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응징하라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이다. 마지막 불문율은 시합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이 불문율 때문에 MLB에선 자주 몸에 맞는 공의 대상이 되는 선수가 있고, 벤치 클리어링 촉발자도 존재한다. 바티스타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카를로스 고메스(31)가 대표적이다. 2014년 4월 23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밀워키 브루어스 경기에서 3회초 고메스가 큼직한 외야 타구를 친 뒤 공을 응시하며 거의 걷다시피 베이스를 돌다가 공이 펜스 상단을 맞고 튀어나오자 전력질주해 3루에 도착했다. 이게 화근이 돼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다.

미국에선 이런 불문율이 없는 한국 프로야구를 이상한 시각으로 본다.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 배트플립이 아무 문제없지만, 미국에선 상대방 모욕행위’라는 기사를 통해 롯데 황재균과 최준석의 빠던 동영상을 웹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베테랑 외야수 토리 헌터(41)는 “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다. 미국에서 그랬다간 다음 타석에서 공이 목을 향해 날아올 것”이라고 했다. 박병호는 지난해 메이저리그 입성을 준비하며 이전의 호쾌한 빠던을 버렸다.

유일하게 이런 불문율을 지키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가 한 사람 있다. 바로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41)이다. 이승엽은 홈런을 치면 되레 더 빨리 그라운드를 돈다. 지난해 한·일 통산 400호 홈런을 때렸을 때도 이승엽은 특별한 세리머니 없이 조용히 배트를 내려놓고 홈을 밟았다. 그는 “과도한 홈런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게 상대 투수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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