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자장면 부대, 백령도 해병대에 떴다… 경기 창성시민교회 자장면 봉사단

입력 2016-06-01 21:10 수정 2016-06-01 21:12
백령도 해병대 제6여단 방공부대 장병이 31일 창성시민교회 자장면 선교 봉사단원으로부터 자장면을 배식 받고 있다.
장병들이 자장면을 먹으며 장제한 목사(오른쪽) 내외와 활짝 웃고 있는 모습.
31일 오후, 인천 옹진군 백령도 해병대 제6여단 본부 식당 앞에 연두색 앞치마부대가 떴다.

앞치마에는 ‘창성시민교회’ 또는 ‘창성교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재료손질팀, 제면팀, 볶음팀으로 나뉜 자장면 선교 봉사단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식당 내부에선 중화요리 주방장 17년 경력의 윤인호(55) 집사가 총지휘에 나섰다. 400인분을 조리 중인 대형 가마솥을 열자 감자와 양파, 돼지고기가 춘장과 어우러져 고소한 향기를 풍겨냈다.

경기도 광주 창성시민교회(장제한 목사) 성도들로 구성된 자장면 봉사단이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복무중인 해병대 장병들을 찾았다. 봉사단의 출정은 5월에만 네 번째다. 일주일 전엔 전남 고흥군 소록도를 방문했다.

이번에는 나흘 동안 백령도·대청도·소청도를 돌며 장병 5000여명에게 자장면을 대접하는 게 목표다. 서울 소망교회(김지철 목사)는 식자재비 후원으로, 벧엘교회(김달수 목사)를 비롯한 몇몇 교회 목회자와 사모들은 봉사단원으로 힘을 보탰다.

군용 트럭에 실린 채 여단 본부를 떠난 자장면 소스와 면발이 포병대대, 공병중대 등 예하부대에 속속 도착했다. “왕 곱빼기로 줄 테니 많이 먹어. 항상 건강하고.” 길게 늘어 선 대기열 앞에선 어머니 같은 봉사단원들의 미소와 격려가 푸짐한 자장면 한 그릇과 함께 전달됐다. 나무젓가락에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막 6:37)는 말씀이 새겨져 있었다. 검게 그을린 장병들의 얼굴에선 연신 미소가 떠올랐다.

김승우(19·방공중대) 이병은 “일주일 전 첫 휴가를 다녀왔는데 어머니가 해주시던 김치찌개처럼 자장면에서 정성이 느껴진다”며 웃었다. 지난 2월 아들을 군대에 보낸 이선영(47·여) 권사는 “장병들을 보니 휴가 나온 아들에게 자장면을 사주는 것 같다”며 “장병들이 더 힘을 내 우리나라를 든든하게 수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창성시민교회는 12년 전 경기도 포천의 한 군부대에서 자장면 선교 봉사를 한 것을 시작으로 매달 2∼3회 자장면 봉사를 간다. 도서지역 군부대와 미자립교회, 교도소 등이 주 봉사지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때는 팽목항으로 달려가 자장면 한 그릇에 위로를 담아냈다. 초강력 태풍이 불어 닥친 필리핀 타클로반을 찾아 복구활동 중인 아라우 부대 장병들과 피해 주민들에게 자장면으로 용기와 희망을 전했다.

매년 평균 30여회, 하루에 적게는 300인분에서 많게는 8700인분의 자장면을 대접하는 것은 성도 200여명에 불과한 교회가 진행하는 사역 치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장제한 목사는 “성도 60여명이었던 상가 지하교회 시절부터 복음과 위로를 전하기 위해 쉼 없이 이어 온 사역”이라며 “주로 평일에, 원근각지에서 이뤄지는 봉사지만 한마음으로 동참해주는 성도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창성시민교회에는 다른 교회엔 없는 특이한 헌금 봉투가 마련돼 있다. 바로 자장면 선교 헌금 봉투다. 한 성도는 “주일 헌금을 1만원 낼 때도 자장면 선교 헌금은 5만원 내곤 한다”고 귀띔했다. 자장면 선교 봉사가 성도들에게 얼마나 특별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군 복음화와 청년 선교 차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최덕순(65) 사모는 “청년들과 만나 말 한마디를 나누는 것도 힘든 시대지만 봉사 현장에 가면 수천명의 청년들을 만날 수 있다”며 “군 생활을 하며 신앙이 약해져 갈 때 나눈 몇 마디가 신앙의 끈을 다시 조여 맬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장병들의 입술이 춘장 색깔로 변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장 목사는 “자장면이 필요한 곳이면 평양이라도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백령도=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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