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동훈] 대마불사의 추억

입력 2016-06-01 18:40

“밥은 먹고 다니냐?”

한국영화 가운데 수작으로 꼽히는 봉준호 감독의 2003년작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이 끝내 검거하지 못한 연쇄살인범을 향해 던진 외마디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비웃을 때 단골로 사용된다. 미제로 끝난 1980년대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배우 송강호는 이 명대사를 애드리브로 토해냈다는데, 다분히 중의적이다. 글자 그대로 범인을 향해 밥은 챙겨 먹고 범행을 저지르는 건지 묻거나, 너 같은 (나쁜) 인간이 밥 먹을 자격이 있냐고 울분을 토하거나 둘 중 하나지만 어쨌든 범인을 잡지 못한 허탈함의 표현이다.

살인의 추억의 ‘종착역’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범인 검거 실패를 의미하는 어두운 터널 속이 그곳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의 관객을 향한 응시는 화성연쇄살인 사건이 미궁에 빠진 것은 이 사회와 지도층의 책임이라고 항거하는 것 같다. 80년대 정국은 신군부의 정권찬탈에 항거하는 민주화 바람이 거세다 보니 경찰이 국민의 안녕보다 군사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음을 고발하려 했을 것이다. 나아가 영화는 시위진압 장면과 연쇄살인 범행 행각을 나란히 보여줌으로써 살인의 추억이 ‘80년 광주’의 피비린내 나는 대량학살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은근히 암시한다. 영화 밖 세상에서도 경악스러운 사건이 발생할 경우 관심은 항상 책임 소재로 쏠린다. 그러나 열의 여덟아홉은 흐지부지 꼬리만 붙들려 가고 몸통은 온데간데없다.

경제적 사안은 어떤가. 현재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조선사 구조조정을 보면 이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회의원들이 경남 거제 지역을 찾아가 조선업을 살리겠다며 주민들을 다독이는 모습이 찜찜하다. 국책은행을 통해 20조원 가까운 혈세가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이 언제 글로벌 조선업황이 개선돼 경영이 호전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인기 발언만 내뱉고 있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1997년 외환위기의 산물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글로벌 경영을 진두지휘했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무리한 사업 확장과 퍼주기 식 관치금융의 결과물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당시 상황을 “회계장부는 믿을 것이 못돼 담보나 거창한 사업이 있으면 무조건 대출해주던 시절”이라고 회고한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한덕수 전 총리는 당시 사석에서 “자금에 쪼들리던 대우그룹 측이 추가 대출을 해주지 않으면 대한민국 경제가 위험하다며 협박해 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정부는 세계 1, 2위를 다투던 우리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 산업은행을 통해 할 수 없이 이 회사를 넘겨받았지만 15∼16년이 지난 지금 무엇을 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주인 없는 회사마냥 정피아, 관피아들이 이곳을 들락거리며 호의호식했다. 그러는 동안 대우조선의 부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외환위기 때 막대한 수업료를 지불하며 원시적인 회계장부의 사용과 정경유착, 황제경영의 폐해 등을 청산하는 방법을 배웠음에도 우리 당국자들 뇌리에는 큰 것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 말이다. 오죽하면 이 회사에 1조5000억원을 대출해준 농협이 차일피일 눈치만 보다 결국 물려버린 것도 ‘설마 망하도록 놔두겠어?’ 라며 그 종착역을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회사를 죽여야 할 경우 부실 책임에 대한 화살이 자신들을 향할 것이 두려워 억지로 살리려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우조선해양 부실의 책임자들이여! 밥은 먹고 다니는가?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