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묻지마’ 범죄를 줄이려면

입력 2016-06-01 19:30

‘강남 묻지마 살인 피의자 검(檢) 송치…후회? 잘 모르겠다’ ‘강남 이어 부산, 되풀이되는 묻지마 범죄’ ‘밖에 나가는 게 두렵다… 묻지마 범죄 왜?’ ‘처음 만난 사람 죽이려 했다, 또 다시 묻지마 범죄’….

최근 한 달 새 국내 신문·방송을 통해 보도된 사건기사 제목들이다. ‘묻지마’ 일색이다. 전국 곳곳에서 묻지마 칼부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무고한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덩달아 사회적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는 총 163건이나 된다. 연평균 54.3건이다. 영문 모를 살인 또는 폭력 사건이 1주일에 한 건씩 발생한다는 얘기. 적잖은 발생빈도다. 일련의 묻지마 범죄에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묻지마 범죄를 4가지 관점에서 해석한다. 묻지마 범죄, 특히 흉악 범죄에서 가장 흔한 유형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소시오패스)다. 이어 경제난 등으로 인한 사회 불만과 음주 폭력, 정신질환 등의 순서다.

인격 장애란 한 개인이 지닌 사고방식과 행동거지가 사회적으로 갈등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이상 성격을 가리킨다. 보통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측 가능한 생각이나 감정, 행동을 보인다. 그런데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는 사람은 그런 수준을 벗어나 비상식적으로 편향된 생각이나 행동을 한다. 특이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소시오패스가 잡혀갈 때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 탓을 하고 세상 탓, 남 탓을 하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어린 시절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학교폭력 등으로 인한 좌절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고 계속 쌓여 트라우마로 발전한 결과다.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강남역 묻지마 여성 살인사건의 피의자를 포함해 최근 들어 발생한 일련의 묻지마 범죄 피의자들에게서 자주 드러나는 성향”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성향, 성격 이상을 교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청소년 시기 마음의 상처, 즉 트라우마가 워낙 깊은 데다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들이 인정하지 않는 까닭이다. 따라서 마음의 병이 안 되게 잘 양육하는 것이 장차 저지를지도 모를 범죄를 막는 최선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뚤어질 수 없는 정신보건환경을 청소년기에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미국,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이를 위해 학교와 사회, 경찰과 병원으로 이어지는 4각 위기대응 관리체제를 상시 가동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상 청소년 정신보건 관리장치가 전무한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년복지상담기관 ‘위센터’가 시도 교육청 단위로 운영되고 있지만,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학교마다 가동돼야 할 일선 상담소 ‘위 클래스’가 인력 부족 등으로 제 역할을 못해서다. 국민 정신보건 관리체제 확립을 위해 국가적 차원의 투자가 시급하다.

정신과 의사들은 무엇보다 따돌림 등 학교 폭력을 조기에 발견해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심리상담 전문가를 양성, 각급 학교에 전진 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예산 부족으로 유명무실한 ‘위 클래스’도 정상화시켜야 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갑질’ 횡포 논란 등 구조적 병리현상을 해소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모름지기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법이다.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의 안위와 건강성은 약해지게 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