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산업의 위기가 연일 뉴스에 오르고 있다. 뉴스들은 주로 경제의 위기, 국가의 위기라는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다. 이 뉴스들은 관료나 경제전문가, 기업에 의존해 서울에서 작성된다. ‘현대조선 잔혹사’는 조선소 현장으로 데려가 노동자들 얘기를 들려주면서 현재 위기의 본질이 노동자의 위기, 특히 하청 노동자의 위기라는 걸 말하고자 한다.
저자 허환주는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의 기자로 지난 6년간 울산을 오가며 조선소 관련한 노동 이슈들을 취재해 왔다. 2012년에는 경상남도의 작은 조선소에 위장 취업해 12일간 일을 해보기도 했다.
“결국 사고가 났다. 40대 여성이 6m 아래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됐다. 그때 나는 그런 큰 사고가 발생했으니 뭔가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최소한 안전 그물막이라도 설치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장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노동자들 사이에 작은 동요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세계 1위 조선소 현대중공업을 무대로 한 허환주의 이 노동르포집은 뜨겁고 치열하다. 한 젊은 기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용기와 집념으로 써낸 글들이다. 그와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동자들의 표정과 목소리, 한숨, 불안, 절망 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책 구성도 하나의 주제를 탐사해가는 기자의 취재기 형식이라서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그의 탐사 대상은 현대 조선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이다. 그가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 취재에 매달리게 된 이유는 왜 그렇게 많이 죽어가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3장 ‘무사고 365일, 열세 명이 사라졌다’는 이 책의 고갱이라고 할만한 페이지들이다. 2014년 한 해 동안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사망한 13명 노동자들의 사연을 다룬다. 저자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 어쩌면 알려지지도 않은, 이 13명의 죽음을 파고든다. 추락사고가 많았고, 보호장치만 규정대로 설치했어도 피할 수 있는 죽음들이었다. 대부분 산재 인정도 받지 못했다. 이들 가운데 원청 노동자는 한 명도 없었다. 13명 전부가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책은 조선소에서 일하다 다치고 죽은 노동자들 얘기로 가득하다. 자살한 사람들, 파산한 업주들 얘기도 나온다. 노동자만 죽는 게 아니다. 하청업체 사장도 총무도 자살한다. 조선소 한 군데에서만 이렇게 많은 비극들이 생긴다. 저자는 조선소의 비극을 보고하면서 이야기를 하청노동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모아간다.
“사고가 난 업체는 현대중공업에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된 임시 업체였다. 원청에서 ‘후려치는’ 기성(원청이 하청업체에 주는 공사비)을 감당하지 못하고 퇴출당한 업체를 대신해 들어온 것이다. 당연히 신규 업체는 후려친 기성을 그대로 받았다. 기성이 낮으니 안건비를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한 달 동안 진행해야 하는 공사를 보름 안에 마무리하려 했다.”
책은 하청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사장들, 정규직 노동조합 간부들, 지역의 노동운동가들, 조선산업 연구자들 등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노동자들의 죽음과 하청노동이란 키워드로 한국 비정규직의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인다.
대형 조선 3사에 근무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는 2016년 3월 말 현재 9만5000명에 달한다. 원청 생산직 노동자 한 명당 하청 노동자는 3.5명이다. 현재의 조선업 위기도 이들이 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만 지난 1년3개월 사이에 7700여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라졌고, 대형 조선 3사에서 올해 최소 2만명 이상의 하청 노동자가 해고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서도 벌써 7명의 노동자가 현대중공업에서 사망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현대조선 잔혹사] 조선소 노동자들의 죽음… 하청노동의 잔혹사
입력 2016-06-02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