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정의와 사랑이 만날 때

입력 2016-06-01 21:08

모두가 예수님의 입을 주목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체포된 여인을 잡아와 예수님 앞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옹호하면 율법을 어기는 셈이고, 이 여인을 돌로 치라 하면 로마법의 살인에 대한 규정을 어기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여인이든, 예수님이든 한 사람은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십니다. 처음 땅에 쓰실 때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세등등하여 예수님께 계속 답변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의 행동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을 하시자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양심을 일깨웠습니다. 남의 허물을 탓하며 활활 타오르던 의로움의 성난 불길이 잠잠해졌습니다. 예리하게 갈고 닦았던 비난의 화살은 활 시위에 걸린 채 당겨질 수 없었습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죄의 흔적이 많았을 어른부터 젊은이까지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과 동일한 행동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으려 했던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무언의 계시였던 것입니다.

부끄러워 숨을 곳을 찾는 사람들을 책망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시고 조용히 자리를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전능자의 자비였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떠날 때까지 예수님은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잠깐의 속임수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온몸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현하고 계셨습니다. 모두가 떠난 것을 확인하신 후에야 예수님은 간음했던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가 죄인이냐”고 묻습니다. “내 말이 맞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늘과 땅을 구분하며 상대적 우월감에 젖기도 하고, 정의와 사랑을 저울의 양편에 올려놓으며 자신들의 편의와 성향에 따라 편 가르기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며 우리의 기준이 땅이 아닌 하늘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시며(마 9:13) 정의와 사랑을 분리하지 않으셨습니다. 편협한 정의가 목소리를 높일 때 예수님은 몸을 굽혀 땅에 쓰셨고, 자비와 사랑이 필요할 때 다시 몸을 굽혀 땅에 쓰는 일을 반복하셨습니다. 정의만, 또는 사랑만 외치는 절름발이 신앙으론 부족합니다. 정의와 사랑이 만날 때 죄는 물러가고, 사람은 살아납니다. 온전한 구원은 어느 하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갈등과 분열이 가득한 이 시대에 몸을 굽혀 땅에 쓰신 예수님의 행동을 묵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

◇약력=△장신대 신대원, 실천신대 졸업 △서울 덕수교회 부목사 역임 △현 도시문화선교모임 시티오브조이(City Of Joy) 코디네이터, '좋은 영화관' 필름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