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은 어떻게 진화론에 맞서 왔나

입력 2016-06-01 18:45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과연 과학으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상 많은 이들이 과학으로 성경을 입증하기 위해 무수한 시도를 해왔다. 새 책 ‘창조론자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찬찬히 살펴본다. 사진은 천문돔에서 우주교육을 체험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국민일보DB
창조론자들
로널드 L 넘버스. 새물결플러스 제공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과학과 종교의 동맹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불과 20년 만에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사회와 학계가 진화론을 채택하면서 창조론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듯 보였다. 20세기 초반 학교에서 생물학과 지구과학을 정식 교과로 가르치면서 창조론자들은 사실상 멸종 위기에 처한 듯했다. 하지만 1880∼90년대 이 논의가 학계를 넘어 교회라는 종교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일대 반격이 시작된다.

이 책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화론에 맞서 성경의 창조론을 지키려 했던 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총 924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으로, 창조론 논쟁을 총망라한다.

저자는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에서 과학사와 의학사를 가르치다 최근 은퇴한 학자다. 국제과학사·과학철학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뜨인돌)를 통해 과학과 종교가 사사건건 대립했다는 것은 편견이며, 근대 과학의 발전에 기독교 신앙과 교회 조직이 상당 부분 기여했음을 소개한 바 있다.

이 책 ‘창조론자들’에선 각 시대에 따라 근본주의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이 과학, 특히 진화론에 어떻게 맞서왔는지를 ‘역사’로서 기술한다. 과학이나 신앙 어느 한편에 서서 옹호하는 대신, 풍부한 문헌 정보와 사실을 동원해 거리를 두고 시종일관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전반부에선 1920년대 젊은 지구론(지구의 역사가 1만년 이내로 짧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의 활동 대목이 눈길을 끈다. 화석 연구를 비롯해 각종 지질학적 연구 결과를 무너뜨리면 진화론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 프라이스는 성경 속 노아의 홍수가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면서 그랜드캐니언을 비롯해 온갖 지층 현상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홍수지질학(Flood geology)’을 주창했던 인물이다. 저자는 그가 당시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Seventh-day Adventist church)’의 신도였으며 지도자 엘렌 화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적고 있다. 당시 성경 속 안식일 규정을 철저히 따랐던 안식일교도들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했다. 그래서 진화론을 반격하는 선봉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추어 연구가였지만 열성적인 노력 끝에 1923년 ‘새로운 지질학’으로 안식일교도 외에 다른 기독교인들로부터 주목받는 데 성공했다. 반면 지질학계에서는 그의 연구 결과를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1920년대 활발했던 반진화론적인 흐름은 1960년대 들어와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 또는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이란 이름으로 재개된다. 1961년 존 휘트컴과 헨리 모리스가 발표한 책 ‘창세기의 홍수’의 역할이 컸다. 이 책은 기존의 홍수지질학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인간과 공룡이 같이 살았다는 증거라며 1957년 텍사스의 팰럭시 강을 탐험하던 중 인간과 공룡의 발자국을 함께 발견했다는 증언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증거를 둘러싼 논란은 거셌고, 이들 스스로 이 부분을 빼버리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저자는 창조과학자들이 연구 과정에서 어떻게 안식일교의 흔적을 지우고자 노력했고, 어떻게 과학을 ‘활용’했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책 말미에는 1991년 초판에선 다루지 못했던 지적 설계론(유기체는 고도로 복잡하기 때문에 진화를 통해 형성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론)과 미국 밖 창조론의 확산을 소개한다. 2006년 증보판에 수록된 것이다. 저자는 “아시아에서는 특별히 한국인들이 창조론을 위한 발전소 역할을 하면서 창조론의 메시지를 자국과 해외에 전파했다”며 1981년 설립된 한국창조과학회의 활동상도 간략히 소개한다.

저자는 이 책이 ‘젊은 지구론’이나 창조론자들을 비과학적인 맹신도로 폄하할 뜻은 없다고 선을 긋는다. 그는 “독자들이 나의 개인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제시하는 증거와 논증을 바탕으로 창조론 이야기에 대한 나의 해석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젊은 지구론과 창조과학에 대한 비판적 서술로 읽히는 대목이 많다. 한국의 창조과학자 입장에서는, 이 책이 한국에선 이단으로 간주되는 안식일교의 역할을 언급하고 있는 대목이 불편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럼에도 과학과 신앙의 양립을 고민해온 이들이라면 오랜 시간을 들여 읽어볼만하다. 국내 과학자와 신학자들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다양한 반응과 평가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 책의 출간이 정통 교리와 신학 위에서 어떻게 과학을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