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낵컬처 시대… ‘초 단위 아트’ 만나보세요

입력 2016-06-01 18:37
심래정 작가의 '윤규' 애니메이션. 하루가 15초뿐인 가상의 인물 윤규가 초스피드로 늙어가는 모습을 담았다.
박종규의 '방관자의 미로' 설치작품.
끊임없이 ‘까톡’(카카오톡 알림음)을 확인해야 하는 세상이다. SNS를 통해 정보와 이미지는 넘쳐나고, 침대에서조차 스마트폰을 쥐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한국 사회. ‘초(秒) 단위’ 인생을 강요받는 현실은 어디서든 와이파이가 터지는 IT강국의 그늘이다. 심래정 작가는 하루살이보다 더 짧은, ‘15초가 하루’인 ‘윤규’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내세워 풍자했다. 애니메이션 속 홍안의 윤규는 하루하루 초스피드로 노인으로 변해간다.

시 단위에서 분 단위로, 마침내 초 단위로 하루를 계획하고 움직이는 현시대를 미술로 풀어보는 두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전시기간인 총 50일 동안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윤규 애니메이션은 서울 종로구 율곡로 사비나미술관의 ‘60초 아트’전에서 만날 수 있다. 개관 2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전시다. 총 15팀이 참여해 영상, 설치, 애니메이션, 웹툰, 조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초스피드 정보화 시대의 현상을 짚는다.

방&리의 ‘불량화소’는 60개의 이미지가 10초 동안 생성됐다가 이내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영상 작품이다. 인세인박은 온라인상에서 정보가 어떻게 변질되는가를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에 대한 네티즌의 잘못된 신격화를 통해 고발한다. ‘예수처럼 죽다’라는 작품 제목이 보여주듯 그가 남긴 말들이 예수의 어록과 겹쳐지는 장면이 섬뜩하다. 크로스디자인랩은 해시계, 물시계를 차용한 ‘시간 기계’라는 설치 작품을 내놓았다. 이 기계는 우리를 옥죄는 60이라는 시간 단위가 아닌 99라는 초월적 시간 단위를 제안하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시간의 노예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는 작품인 셈이다. 7월 10일까지.

인근 종로구 자하문로 리안갤러리에서 열리는 박종규(50) 작가의 개인전 ‘방관자의 미로’도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사회를 비판한다.

대구 계명대학교 출신의 박 작가는 정보화 사회의 특성을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화소)로 시각화했던 기존의 작품을 진전시킨 회화, 조각, 영상작품을 내놓았다. 픽셀을 엿가락처럼 늘리거나, 폭포 같은 영상으로 만드는 등 시각적인 실험이 돋보인다.

압권은 전시 제목이기도 한 ‘방관자의 미로’라는 설치 작품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구조물에는 총 21대의 TV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누군가의 이미지를 도촬한 CCTV영상에는 나도 모르게 찍힌 전시장 안의 내 모습도 비친다. 그렇게 CCTV에 비친 모습이 너무 익숙해 생활의 일부분처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 우리가 직면한 초단위 시대 자화상이 아닐까. 30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