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관조

입력 2016-05-31 19:52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봄.’ 국어사전에 풀이된 관조(觀照)의 뜻이다. 맘이 바쁠 때나 어떤 곤혹스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 나름 위기라고 판단될 때에 내가 의도적으로 떠올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듯이 모든 상황을 ‘일단 정지’시켜놓고 잠시 정리·분석해보면 의외로 간단하고 명료한 진단과 처방이 나올 수 있다. 굳이 관조라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아마도 소소한 일상 속에서 대부분 이런 경험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심각한 고민이 생기거나 난조에 빠졌더라도 잠시 되돌아보면서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보면 쉽게 해결책을 생각해내거나 고민 자체를 하지 않게 되는 것 말이다. 관조는 상황이나 현상을 객관화시켜 쿨하고 냉정하게 뜯어보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여유라고나 할까.

‘묻지마 살인’ ‘분노 조절 장애’ ‘조현증’ ‘수백억 수임료’ ‘계층 상승 불가’ ‘가난 대물림’…. 오늘 하루치 신문만 봐도 쉽게 볼 수 있는 단어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말들인데 하나같이 숨이 탁탁 막히는 것들이다. 이런 표현들이 SNS상에서 퍼지면 또 다른 분노와 비난이 얽혀지면서 점점 더 휘발성이 강한 사회로 치닫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의 뇌와 신경이 쉴 새가 없다.

그래서 그런가. 최근 한강 시민공원에서 가진 ‘멍때리기 대회’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올해가 두 번째라는데 예선전도 치를 만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멍하게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하자는 대회 취지에 무척 공감이 간다. 정신적 스트레칭 아닌가. 멍때리는 동안에 뇌는 휴식을 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단다. 이때 뇌의 DMN(default mode network)이라는 부위가 활성화되는데, 불필요한 정보가 삭제되고 그 공간에 정리된 정보와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된다고 한다. 멍때리기는 ‘이따금 관조하는 생활’의 첫 걸음인 것 같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