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B급 예술가’의 탈선

입력 2016-05-31 20:36

예술은 세상을 앞서간다. 그들의 촉수는 풀잎처럼 예민하다.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에 격하게 공감한다. 그래서 아방가르드는 늘 예술가들의 몫이다. 이에 비해 법은 뒤따라간다. 세상의 분란을 정리하고 뒤치다꺼리한다. 법이 앞서가면 사회와 개인의 삶이 흔들린다. 답답해도 그게 법의 숙명이다. 이렇게 속성이 다른 예술과 법이 충돌하면?

예전에 저명화가의 작업실에 갔더니 벽면에 일군의 젊은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로프를 타고 오르내리며 대형 캔버스에 붓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아해하는 필자에게 화가는 파이프를 문 채 말했다. “저게 다 배우는 거지 뭐. 저 친구들 간에도 실력 차이가 있다니깐!” 작품은 화가의 감리 하에 제작되고 완성되고 있었다. 화가의 선택은 범법일까, 위법일까, 탈법일까.

조영남씨의 경우를 보자. 검찰이 검토하는 사기죄는 상대방을 착오에 빠뜨려 부당한 이득을 취해야 한다. 미술로 따지면 남의 그림을 자기 그림인 것처럼 속여 돈을 벌어야 한다. 문제의 화투 그림은 제보자 송모씨의 것인가, 조씨의 것인가. 내 생각에는 둘 다 아니다. 90%를 그렸다는 송씨도 작품은 조씨 것임을 인정했다. 아무리 ‘B급’이라고 해도 예술행위를 형벌의 칼로 내려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저작권 위반 부분은 더 복잡하다. 저작권법은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만 보호하는데, 일품주의 회화가 아닌 개념미술에 오면 이 이론의 설명력이 떨어진다. 기성품 변기(便器)에 서명을 한 작품으로 미술사에 오른 마르셀 뒤샹은 어떤 표현을 했기에 권리를 보호받는가. 화투 그림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10% 정도 가필하고 서명한 조씨는 뒤샹과 다르게 취급받는가. 대중가수 출신이라서? 개념미술이 아니어서? 법이 사람과 장르에 따라 적용을 달리한다면 규범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만다.

다분히 사기성이 있고 저작권을 침해한 소지도 있지만 연예인이기에 더 크게 보이는 게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단순한 용역 혹은 도급 계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비즈니스를 하다가 관계가 깨진 것이다. 송씨도 이런 계약에 장기간 응했고, 그림에 자기 이름이 표기되지 않아도 양해했다. 심지어 ‘조영남 그림’이라며 지인에게 판 적도 있다고 한다. 좀 유별난 관계이긴 하지만 사인 간의 거래이고, 이런 민사적 사안에 검찰이 개입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다.

창작이나 저술에 대한 우리의 ‘관행’은 올바른가. 저 많은 명사들의 자서전은 모두 자기가 썼을까. 베스트셀러가 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신화는 없다’의 저자들(김우중 정주영 이명박)만 해도 자신의 구술을 정리하고 자료를 모은 대필 작가가 있는데도 좀처럼 이들의 존재를 밝히지 않는다. 창작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도 유령 작가로 남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조영남씨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는 ‘화수(畵手)’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장난을 너무 많이 쳤다. 조수를 둘 수는 있어도 그것이 ‘관행’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동틀 무렵까지 캔버스를 부여잡고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모독이다. 설사 ‘팝아트’를 내세운다 하더라도 조력자에 기댄 부분이 지나치다. 그런 조력자를 꽁꽁 숨긴 것 또한 패착이다.

조씨는 이번 일로 사회일반의 신뢰가치를 크게 손상시켰다. 위작 시비로 어려움을 겪는 그림시장에 재를 뿌렸다. 그래서 권유한다. 스스로 진정 뉘우친다면 “화투 가지고 놀다가 쫄딱 망했다”고 눙칠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사과문을 내고 절필선언을 하라고. 그리고 다시는 화단 주변에 얼쩡거리지 말라고. 그게 아웃사이더로나마 한때 몸담았던 미술계를 향해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예의다.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