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하게 에로틱하게… 춤으로 다시 읽는 동화

입력 2016-05-31 20:50
매튜 본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 LG아트센터 제공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스노우 화이트’. 대전예술의전당 제공
동화는 힘이 세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생명력이 있다. 현대적인 각색으로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끊임없이 변주된다. 클래식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6월 세계적 안무가들이 동화를 원작으로 만든 흥미로운 무용 2편이 한국을 찾는다. 오는 22일∼7월 3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매튜 본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24∼25일 대전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스노우 화이트’(백설공주)가 그 주인공이다.

영국 출신의 매튜 본은 근육질 남성 백조가 등장하는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의 내한공연으로 우리나라에도 인기가 높다. 뛰어난 스토리텔러인 그는 ‘백조의 호수’ 외에 ‘호두까기 인형’ 등 고전발레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데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도 동화의 뼈대만 남겨둔 채 새로운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속 수동적 캐릭터였던 오로라 공주는 주체적인 말괄량이로 21세기 에 깨어난다. 그리고 원작에는 없던 마녀 카라보스의 아들 카라독이 등장해 공주를 사랑하는 정원사 청년 레오와 삼각관계를 만들어낸다. 레오는 뱀파이어 요정 라일락 백작에게 목을 물려 영원한 삶을 얻음으로써 공주가 깨어날 때까지 그 곁을 지킨다. 영화 ‘트와일라잇’ 등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 있는 뱀파이어 스토리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안무가라는 수식어답게 그의 작품은 무용으로는 드물게 장기공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 역시 2012년 영국 초연 당시 개막 전에 8주간의 공연 티켓이 매진된 바 있다. 2013년 미국 투어에서도 LA비평가협회상 3개 부문 등을 휩쓰는 성과를 거두며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올해 서울을 시작으로 아시아 투어를 시작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안무가 프렐조카주는 발레와 현대무용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대담한 안무 스타일로 유명하다.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강렬한 무대와 에로틱한 분위기는 그의 전매특허다. 그가 2008년 선보인 ‘스노우 화이트’는 동명 동화를 소재로 한 발레들 가운데 사실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초창기부터 동화를 주요 소재로 삼았던 발레계에서 ‘백설공주’는 의외로 기억되는 버전이 없다. 전 세계 소규모 발레단에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하나같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명한 안무가들은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그다지 영감을 느끼지 못했던 듯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프렐조카주의 ‘스노우 화이트’는 스토리 전개에선 대체로 디즈니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천진난만한 판타지를 빼고 그림형제의 동화 초판에 보이는 에로틱하고 잔혹한 분위기를 추가함으로써 어른을 위한 발레로 만들었다. 만삭의 왕비가 출산하며 죽어가는 강렬한 오프닝부터 새 왕비가 공주에게 독사과를 잔인하게 먹이는 장면 등은 과격하지만 단번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감각적인 안무 외에 말러의 교향곡에서 교묘하게 발췌한 음악과 ‘패션계의 앙팡테러블’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의상 역시 발레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이 작품은 초연 이후 세계 주요 극장으로부터 잇따라 초청을 받고 있다. 한국에도 2014년 선보여 큰 인기를 끌어 이번에 다시 내한공연을 갖게 됐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