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일대일로가 낳은 12조원 유령도시… 돈 쏟고도 황폐화 란저우市

입력 2016-05-31 04:00
서울 면적의 1.35배 넘는 대지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불도저로 수백개의 모래언덕과 황토고원을 깎아 지은 도시지만 행인은 드물다. 공장부지에는 짓다만 건물과 타워크레인만 외로이 서 있다. 아파트단지에도 사람 사는 기척이 없다. 시안에 이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의 시작점, 간쑤성 란저우 신구(新區)의 풍경(사진)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르는 일대일로 무역길이 첫걸음부터 볼썽사납게 꼬였다. ‘제2의 실크로드’를 표방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명령 아래 11조9220억원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었지만 서쪽 무역길의 관문 란저우는 유령도시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황폐화된 란저우 신구를 직접 방문해 실태를 29일(현지시간) 전했다.

중국 정부는 새로 개발된 란저우 신구에 건축노동자를 포함해 15만명이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WP는 “현장을 방문하니 이 숫자가 의아스러울 정도로 건물이 텅텅 비어 있었다”고 전했다. 부동산 중개기업 ‘이쥐(易居)’ 관계자는 란저우의 실제 주거비율이 “매우 성공적이지 못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낮은 집값, 각종 감세 혜택, 보조금조차 사람을 모으기엔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서 서부에 중공업 산업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동부 해안지대와의 소득격차를 좁히기 위해 2006년에만 1조 위안(약 180조원)이 투입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자 경기활성화를 위해 이 지역 개발에 더욱 몰두했다. 2013년 취임한 시 주석은 일대일로 계획을 발표하며 서부 개발을 더욱 거대한 프로젝트로 발전시켰다. 계획대로면 2030년까지 란저우는 인구 100만명의 대도시로 발전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접근이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1990년대 상하이의 푸둥지구나 황푸강 유역 개발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방법을 심사숙고 없이 그대로 따라했다는 것이다. 간쑤성 지역에는 자원 말고는 발전을 견인할 요인이 전혀 없을뿐더러 1인당 연간소득이 4000달러(약 477만원)에 불과해 소비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나마 최근 중국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원자재 가격이 폭락해 시련을 겪고 있다.

간쑤성 지방정부는 빚을 끌어들여 상황을 뒤집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홍콩 비그람캐피탈에 따르면 지난해 이 지역의 부채는 500억 달러(약 59조6000억원)로 지역내총생산(GRDP)인 1000억 달러의 절반에 달했다. 자금을 투입했지만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마이너스 1%를 기록했다. GRDP 대비 부채비율은 2009년의 90%에서 한참 오른 200%를 기록했다. 정부는 이 같은 실태에도 야심 차게 밀어붙였던 일대일로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다. WP는 전문가를 인용해 “중국 정부가 과거 장기간 성공했던 모델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월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