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끝난 한국남자프로골프(KPGA) 넵스헤리티지 2016에서 최진호(32·현대제철)는 우승한 직후 동료들로부터 물 세리머니를 받았다. 이 중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동료선수 박효원(29·박승철헤어)에 안긴 한 아이가 그에게 연신 물을 끼얹고 있었다. 최진호의 큰 아들 승언(5)군이었다. 아빠 얼굴엔 함박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아내 김정민(32)씨, 두 아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최진호는 광운초등학교 시절 롤러스케이트 선수로 활동했다. 그런데 4학년 때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 골프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의 매력에 빠졌다. 이듬해 뉴질랜드에서 10개월 정도 골프 유학을 하면서 유망주로 거듭났다. 중학교 진학 후엔 곧바로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됐다. 주니어시절 크고 작은 유소년 대회에서 10승을 거뒀다. 그리고 2004년 KPGA 프로(준회원)와 투어프로(정회원) 자격을 잇달아 취득했고, 2005년 KPGA 투어에 정식 데뷔했다.
처음에는 거칠 게 없었다. 데뷔 첫 해 그는 14개 대회 중 12개 대회에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듬해인 2006년에는 비발디파크 오픈에서 첫 우승을 했고, 그 시즌 상금순위 8위에 올라 명출상(신인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현재 명출상 대상자는 투어 데뷔 연도로 한정돼 있지만 당시에는 협회 입문 3년 이내 선수로 돼 있었다.
그런데 욕심을 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을 생각한 것이다. 이를 위해 거리를 늘리려고 스윙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그런데 무리하게 폼을 바꾸다 골퍼에게 치명적인 드라이버 입스(yips·스윙 불안증)가 찾아왔다. 2008년 출전한 15개 대회에서 모두 컷아웃 탈락이란 수모를 당했다. 어떤 대회에서는 한 라운드에 OB(아웃오브바운즈)를 6개나 쏟아냈다. 주말 골퍼보다 못한 셈이다. 지금도 KPGA 홈페이지에 나오는 그의 이 해 성적은 1, 2라운드 밖에 없다. 최진호는 당시 상황을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적인 부분만 바꾸려다 보니 밸런스가 다 깨졌다. 샷 정확도가 떨어지니까 심리적으로 쫓기게 되고 스트레스도 심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전 재산 1억원을 들고 미국으로 떠났다. 처음 몇 개월간은 골프채 대신 바벨을 들어 올리며 체력 훈련에 집중했다. 몸을 만든 후 다시 골프채를 휘둘렀고, 정확도가 향상됐다. 샷을 테스트하기 위해 미 PGA투어 2부투어 예선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부인 김씨의 도움도 컸다. 최진호는 “중고교 때 주니어 골프선수였던 아내가 슬럼프 때 많은 도움을 줬다”고 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최진호는 2009년 11월 KPGA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 17위로 겨우 통과해 이듬해 투어 진출권을 따냈다. 2010년 레이크힐스 오픈에서 역전 우승을 일궈내며 4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 해 KPGA 재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11년 17개 대회에 참가해 16번 컷통과에 성공하며 완벽하게 입스에서 탈출했다.
군입대도 그를 막지 못했다. 지난해 투어에 정식 복귀한 최진호는 2년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 오픈에서 와이어투와이어(1라운드부터 마지막라운드까지 1위)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올 시즌 KPGA 투어 첫 다승왕이 됐다. ‘넘버 원’이 된 것이다.
그는 한결 넓어진 마음으로 골프를 대한다. 비거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장점인 정확성으로 승부한다. 올 시즌 최진호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80.25야드다. KPGA 선수 중 꼴찌 수준인 78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비거리 대신 정확도와 날카로운 아이언샷으로 커버한다. 드라이버 페어웨이 안착률이 81.79%로 1위이고, 아이언 그린 적중률이 74.44%로 8위다.
최진호는 이런 성공 비결에 대해 ‘가족의 사랑’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아내와 두 아들이 곁에 있기 전엔 그저 골프가 인생의 전부였고, 순위에 따라 중압감도 느꼈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그런데 가정을 꾸리니 세상을 보는 눈과 골프를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단다.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지금 아내 뱃속에 있는 아이가 내 골프의 무한긍정 에너지에요.”
최진호는 “가족이 내게 준 가장 큰 변화는 심리적 안정”이라며 “대회장에 갔을 때도 예전과는 달리 골프 자체를 즐기려고 한다”고 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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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3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