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양궁’ 천재 김민수, 헌신한 어머니께 메달을!

입력 2016-05-31 04:00
휠체어 양궁 국가대표 김민수가 지난달 19일 경기도 이천훈련원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김민수는 오는 9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 양궁 대표선수로 참가한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심심했던 철부지는 담장 위로 올라갔다. 허술한 담장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담장은 가늘고 연약한 두 다리를 으깼다. 119구급차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정신을 잃었다. 수술대 위에서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양쪽 무릎 아래쪽이 사라졌다. 10세가 되던 겨울이었다.

어린아이가 장애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휠체어 양궁 국가대표 김민수(17·울주군 범서고2)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때를 회상했다. “어린 나이에 사고를 당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충격이 크진 않았어요.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죠.”

제15회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9월 7∼18일)을 100일 앞두고 경기도 이천훈련원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 전, 김민수는 긴장한 표정이었다. 단복시연 모델로 나설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에 출전한다는 게 아직 실감이 안 나요. 100일 후 현지에 가서 메달을 따면 저를 위해 헌신하시는 어머니의 목에 걸어 드리고 싶어요.”

김민수에게 활을 쥐어 준 사람은 어머니 이유한(46)씨였다. 이씨는 내성적인 아들에게 운동을 시켜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양궁할래? 사격할래?” 이씨는 초등학교 6학년생인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양궁할래요”라고 대답했다. 이씨는 집 부근에 있는 울산 문수국제양궁장으로 아들을 데려갔다.

활을 잡은 이후 그의 삶이 달라졌다. 인생을 양궁에 걸었다는 김민수는 “시위를 당기느라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박여도 아픈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하루 두 시간밖에 훈련하지 않았지만 기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김철광 장애인양궁협회장은 그에게 선수의 길을 걷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김민수는 2013년 장애인체육 꿈나무·신인선수 캠프에 참가해 본격적으로 양궁에 매달렸다.

김민수는 지난해 10월 강릉에서 열린 제35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엔 울산 대표로 출전해 3관왕에 올랐다. 이어 지난 3월 30일 순천 팔마운동장 내 양궁장에서 열린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1위로 통과했다. 모두 깜짝 놀랐다.

장애인 양궁 강국인 한국에서 활을 잡은 지 겨우 5년 만에, 그것도 체계적인 훈련도 받지 못한 고교생이 쟁쟁한 선배 궁사들을 꺾은 비결은 뭘까. 정진완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체육과장은 “김민수는 재능이 뛰어나고 노력도 많이 하는 선수다. 앞으로 한국 장애인 양궁을 이끌 재목”이라며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더라면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했다.

장애인체육꿈나무는 1년 중 80일 동안 이천훈련원에서 숙식하며 훈련할 수 있다. 지난해 80일을 다 채운 김민수는 어머니에게 “이천훈련원에서 더 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씨는 아들을 데리고 울산 집에서 이천으로 올라와 여관에서 지내며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천훈련원은 모자에게 최소한의 경비만 받고 숙소와 끼니를 제공했다.

리우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딸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민수는 “집중력 하나는 누구보다 강하다”고 대답했다. 장애는 느닷없는 화살처럼 날아왔지만, 김민수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장애를 시위에 걸어 멀리 날려 버렸다.

이천=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