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타격기계’ 빅리그 데뷔 첫 홈런포

입력 2016-05-30 21:21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오른쪽)가 30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원정경기에서 7회초 주자 없는 2사 때 솔로 홈런을 치고 홈을 밟은 뒤 후속타자 매니 마차도와 손뼉을 치고 있다. AP뉴시스

‘그리고…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웃음 가득한 얼굴로 헬멧을 쓴 채 더그아웃으로 뛰어 들어오는 선수에게 감독도, 코치도, 동료 선수들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니 되레 냉랭하기까지 했다. 흔한 축하인사조차 건네는 이는 없었다. 그에게 하이파이브로 인사한 동료는 더그아웃에 들어가기 전 만난 후속타자 뿐이었다.

지난달 11일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홈경기를 통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지 꼬박 50일.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 김현수(28)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첫 홈런을 쳤지만, 같은 팀 동료와 코칭스태프는 이상할 정도로 잠잠했다. 조금 서운한 표정으로 더그아웃 안쪽 구석에서 조용히 보호 장비를 풀었다.

김현수가 더그아웃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갑자기 동료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몸을 두드리고 팝콘과 해바라기씨를 쏟아 부었다. 여느 홈런 때보다 훨씬 더 격렬한 축하인사였다.

김현수는 30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원정경기에서 4-4로 맞선 7회초 주자 없는 2사 때 상대 3번째 투수 제프 맨십의 5구째 시속 148㎞짜리 투심 패스트볼을 잡아당겨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비거리는 120m. 연속으로 선발 출전한 5번째 경기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김현수는 주전 좌익수를 놓고 경쟁하는 조이 리카드를 백업으로 밀어내고 지난 26일 휴스턴 애스트로스 원정경기(3대 4 패)부터 선발 출전했다. 처음에 9번이었던 타순은 다음 날 8번이 됐고, 이틀 전 클리블랜드 원정 1차전부터 2번으로 올라섰다. 볼티모어의 테이블 세터(Table Setter)로 인정받은 것이다.

시범경기에서 부진한 김현수를 개막 25인 로스터에 넣지 않으려 했고, 시즌 초반에도 부정적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벅 쇼월터 감독은 이제 “타율 0.350 이하로 떨어지기 전까지 선발 명단에서 뺄 수 없다”고 말할 만큼 태도를 바꿨다. 쇼월터 감독의 믿음에 김현수는 홈런으로 대답했다.

더그아웃의 침묵은 일종의 신고식이다. 데뷔 홈런을 친 타자를 더그아웃에서 외면하는 메이저리그의 짓궂은 전통이다.

김현수는 타자 대기석 앞에서 반갑게 인사한 3번 타자 매니 마차도와 손뼉을 쳤지만, 정작 분위기가 냉랭한 더그아웃에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이리저리 팔을 내미는 김현수를 등지고 동료들은 웃음을 참고 있었다.

김현수의 홈런은 이 경기의 결승타였다. 볼티모어는 9회초 놀란 레이몰드의 솔로 홈런으로 1점을 추가해 6대 4로 승리했다. 중간 전적 28승20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2위를 지켰다.

김현수는 2번 타자 겸 좌익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1안타(1홈런) 1타점 1볼넷을 기록했다. 한 번의 타석을 더 밟을 수 있었지만 7회 말 수비 때 리카드와 교체됐다. 타율은 0.383(47타수 18안타)으로 소폭 하락했지만 OPS(출루율+장타율)는 0.974로 상승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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