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환자 샤우팅] 신해철법 괴담 한 번 해부해 봅시다

입력 2016-06-01 21:35
한국환자단체 연합회 대표
일명 ‘신해철법’으로 불리는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지난 5월 19일 국회를 극적으로 통과했다. 다만, 자동개시 요건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사망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상해 의료사고’가 아닌 ‘사망 또는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로 다소 축소된 수정안이 최종 의결됐다. 조정신청 남발을 막기 위해 일정한 사유가 있을 경우 14일 이내 조정절차 자동개시 관련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했다.

그런데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일부 의사들이 ‘신해철법 괴담’을 블로그,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유포시키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신해철법 괴담’의 핵심 내용은 모 의사가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페이스북에 올린 도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표 참조).

의료분쟁 조정절차가 개시되면 의사 2인, 현직검사 1인, 의료전문변호사 1인, 소비자권익위원 1인 총 5인으로 구성된 ‘감정부’에서 감정을 한 후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서 그 감정결과를 토대로 조정을 한다. 그러나 양 당사자는 언제든지 민사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조정절차를 중단시킬 수 있고, 감정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거부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민사소송 제기로 조정절차를 중단시켰다거나,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서 조정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어떠한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도 받지 않는다.

‘의료분쟁 조정신청 승낙 시 의사가 입건되고 현장 강제 실시가 된다’는 괴담은 감정위원 중 한명인 현직검사가 의료사고 관련 문서 또는 물건을 조사·열람·복사한다는 핑계로 보건의료기관을 출입해 조사하면 사실상 영장 없는 수사이고, 이 수사결과를 토대로 의사를 기소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감정부 회의에 현직검사의 출석률은 높지 않고, 현재 수사 중인 사건도 과중한 상황에 의료분쟁 조정사건 조사를 위해 보건의료기관을 출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신해철법 괴담’의 단골 메뉴 중 하나가 ‘의료분쟁 조정신청 시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면 의사들이 사망 가능성이 높은 중증질환 환자들을 기피하거나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환자가 사망했거나 중상해를 입었다고 해서 유족들이나 피해자들의 조정신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다소 선급한 추측이다.

현재 고액의 변호사·소송비용을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되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이나 유족들은 상당수가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이 경우 강제로 소송절차가 개시된다. 한국소비자원에 조정신청을 해도 조정절차는 자동으로 개시된다. 따라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하지 않고, 민사소송 제기와 한국소비자원 조정신청을 통해서도 의사들은 소송절차나 조정절차에 강제로 참여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들이 중증질환 환자를 기피하거나 방어 진료를 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이 의료분쟁 조정신청을 했다가 의사가 조정보다는 소송을 원해 채무부존재확인 성격의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조정신청은 각하되고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은 졸지에 피고가 돼 소송절차에 참여하게 된다. 패소하면 또한 수천만원의 상대방 변호사·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사망 또는 일부 중상해 의료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유족들이나 피해자들이 무조건 의료분쟁 조정신청을 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한국환자단체 연합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