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대입 수능이나 회사 면접 같은 중요한 시험 현장에서 떠올릴 말이지만, 담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 시작하면 평생 담배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담배에는 4000여 가지 화학물질이 들어 있고, 그중 43가지는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건강에 해로운데도 끊기가 쉽지 않은 것을 보면 그냥 유혹이 아니라 치명적 유혹이라 할 만하다. 담배는 코카인과 헤로인 같은 마약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하다. 시작은 쉽게 할 수 있어도 끊는 것은 그렇지 않다.
담배의 진실은 담배가 폐암, 후두암, 뇌졸중, 심장질환의 중요한 발생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담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건강에 해롭다는 경각심보다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멋진 상품으로 인식한다. 화려한 디자인의 담뱃갑과 상쾌한 이미지의 디스플레이 광고는 담배의 진실을 가리면서 멋진 상품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부채질한다. 특히 호기심 많은 청소년에게 담배광고는 말 그대로 치명적 유혹이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자 청소년의 흡연율은 11.9%로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담배의 멋진 디자인, 성인이 되었다는 해방감으로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들이 아직 많다.
담뱃갑에 흡연의 폐해를 정확히 알리는 경고그림을 붙이거나 학교정화구역 내 담배광고를 금지하도록 하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담배의 실상에 대해 알게 된 이후의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198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5월 31일을 세계 금연의 날로 정하고 매년 주제를 정해 담배의 실상과 이에 맞는 효과적인 금연정책을 전파하고 있다. 올해 주제는 ‘규격화 무광고 포장 정책 준비가 되셨나요?(Get Ready for Plain Packaging?)’라는, 다소 도발적인 주제다. 규격화 무광고 포장이란 담뱃갑의 경고그림, 경고문구뿐만 아니라 색상까지 규격화하여 담배회사 로고 등 자율적인 이미지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는 정책이다. 2011년 호주를 시작으로 이달 20일 영국이 시행했으며, 프랑스 아일랜드 등도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브라질 등 경고그림을 오래전에 도입한 국가들은 갈수록 크고, 눈에 띄는 경고그림, 담뱃갑 자체의 매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색상을 고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포장된 이미지를 벗기고 담배의 진실과 마주하자는 것, 이것이 국제사회의 일관된 정책방향이다.
정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비가격 금연대책은 이러한 세계 정책흐름에 발맞춰 청소년들을 담배의 치명적 유혹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초점을 뒀다. 담배의 실상을 정확히 몰랐던 과거와 달리 청소년들에게 진실을 정확히 알리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의 의무일 것이다. 물론 흡연자 개인으로는 이러한 정책흐름이 답답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흡연자들도 본인의 자녀가 흡연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 시작하게 되면 순수한 개인 의지만으로 금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흡연자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상 깊게 본 TV 드라마가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주인공이 과거에 살고 있는 형사와 우연히 통신이 되고, 무전기를 통해 과거 발생한 범죄사건의 결과를 알려주면서 미래가 바뀌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TV 드라마에서처럼 담배를 시작하는 과거의 나와 통신할 수 있다면 담배의 치명적 유혹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담배를 시작하게 되면 그 후의 결과가 어떨지 정확히 알고 있다. 결과를 정확히 알면 선택도 바뀌게 마련이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특별기고-정진엽] 담배의 유혹과 건강한 선택
입력 2016-05-30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