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72> 철학영화

입력 2016-05-30 20:13
‘매트릭스’ 포스터

오래간만에 화려한 액션이 보고 싶어 워쇼스키 형제(지금은 남매지만)의 ‘매트릭스(1999)’ DVD를 꺼내봤다. 중국인 무술감독이 안무를 해선지 중국영화 냄새가 풀풀 나긴 했지만 총격신 등 일단 액션들은 훌륭했다. 그럼에도 왠지 액션만으로 이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 관한 이런저런 리뷰들을 찾아봤다.

‘가장 훌륭한 철학영화 중 하나.’ 그 밑에 붙여진 설명은 이랬다. ‘무엇이 현실인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외부의 악의적인 힘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과 사고다. 이 영화는 이 같은 철학적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이 설명이 적확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어도 매트릭스에 어떤 철학적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겠다. 사실 모든 영화는 철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원론적인 얘기 말고 실제로 ‘철학적인 영화’들이 있다.

1. 로프(1948):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실존주의 원칙에 따라 동료 학생을 살해한 학생들을 다룸으로써 반(反)실존주의 영화로 분류된다.

2. 제7의 봉인(1957):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연출한 스웨덴 영화. 삶과 죽음의 의미를 필사적으로 탐색하는 인간의 노력을 그려 실존주의의 영화적 모델로 불린다.

3. 사랑과 죽음(1975): 우디 앨런 감독. 전쟁과 평화, 죄와 벌,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코미디로 카프카적 불안과 키에르케고르적 공포를 직조(織造)해 만들었다.

4. 블레이드 러너(1982): 리들리 스콧 연출의 SF. 할리우드가 사랑한 SF 작가 필립 K 딕의 소설이 원작. 인간과 다르지 않은 안드로이드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 문제와 실존주의를 다뤘다.

5. 트루먼 쇼(1998): 피터 위어 감독. 데카르트부터 사르트르까지 원용하면서 무엇이 진실인가를 천착한다. 트루먼이라는 존재를 탄생시킨 인간을 창조주라는 관점에서 ‘신’이라고 할 때 ‘신은 도덕으로부터 탈피한 존재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