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도어 또… 똑같은 사고 3번째, 바뀐 게 없었다

입력 2016-05-30 00:28 수정 2016-05-30 04:25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28일 오후 5시57분쯤 스크린도어 수리 중이던 외주업체 직원이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들이 사고가 일어난 승강장에 통제선을 치고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뉴시스
28일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김씨가 남긴 가방에는 니퍼, 드라이버 등 공구와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유가족 제공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서울지하철 승강장에서 또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입사 7개월된 만19세 직원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고는 지난해 8월 강남역에서 일어난 사고와 판박이다. 사망자가 스크린도어를 점검하거나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이라는 점,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이면서 숨졌다는 점이 똑같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사고 때 안전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대책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허술한 안전관리, 외주·하청으로 이뤄지는 작업 구조가 빚어낸 ‘인재(人災)’다.

◇아무도 몰랐다=지난 28일 오후 4시58분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승강장의 스크린도어가 오작동했다. 1분 뒤 서울메트로 본부에 있는 전자운영실이 외주업체인 은성PSD에 수리를 요청했다. 연락을 받은 외주업체 직원 김모(19)씨는 오후 5시52분 혼자 승강장에 도착했다. 그는 스크린도어를 열고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 김씨를 보지 못한 듯 열차는 그대로 승강장으로 진입했다. 김씨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였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도 김씨의 작업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전자운영실은 수리를 요청했지만 김씨가 수리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스크린도어 수리 등 작업을 할 땐 역무실과 전자운영실에 작업 사실을 통보해야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됐다. 역무실 내 ‘역사 작업 신청 일지’에는 김씨가 다녀갔다는 흔적이 없다. 전자운영실은 역무실에 수리 요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구의역 관계자는 29일 “스크린도어가 고장나면 역에서 직접 업체에 연락해 해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경우처럼 역무실에 보고가 안 되면 수리를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입사 7개월에 불과한 신입직원이 혼자 수리를 전담한 것도 문제다. 김씨는 2주간 기초교육을 거치고 2월 말까지 실습 교육을 했다고 한다. 은성PSD 황준식 노조위원장은 “사고가 난 토요일에는 직원 4명이 강북 전체를 담당해야 할 만큼 인력이 부족해 2인1조 작업은 불가능했다”며 “규정을 다 지키다가는 수리를 제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29일은 김씨의 생일이었지만 가족들은 그의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했다. 김씨의 가방에는 니퍼, 드라이버 등 공구와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김씨의 아버지(50)는 “무뚝뚝하지만 성실하고 착한 아들이었다”며 “아들이 바쁜 일정에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다. 그래서 생일엔 아들이 좋아하는 피자나 치킨을 양껏 먹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합동으로 안전수칙 준수와 과실 여부에 대해 합동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반복되는 안전사고=4년 동안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빚어진 사망사고는 3차례나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11월 스크린도어 특별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지켜진 건 없었다. 작업 시 열차 감시자를 동행해 2인1조로 출동해야 하고, 출동 사실을 역무실과 전자운영실로 통보하라고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서울메트로 측은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철저하게 확인하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면서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스크린도어 유지·관리 업체를 자회사로 전환하는 안건이 의결된 만큼 오는 8월 자회사를 설립하겠다”고 설명했다.

자회사를 만들면 사고가 사라질까. 서울철도노조 김정섭 차량본부장은 “낮은 임금과 인력 부족이 사고를 불렀다. 자회사를 만든다고 열악한 근무 환경이 개선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심희정 허경구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