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A양은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어느 날 갑자기 ‘월경’이 시작됐을 때 당혹스러웠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빠듯한 형편에 아버지에게 1만원 안팎의 생리대를 사달라고 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궁리 끝에 A양은 신발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B양은 월경이 시작되자 1주일간 학교를 결석했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 1주일 내내 수건을 깔고 누워 있었다. 성실했던 B양이 1주일 내내 결석하자 문병을 갔던 담임교사가 이를 보고 둘은 부둥켜안고 울었다.
유한킴벌리가 기존 생리대 가격을 다음 달부터 20% 올리겠다고 발표하자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사연들이다. 대부분 소녀들에게는 ‘엄마’가 될 수 있는 징후인 월경이 시작되는 것이 ‘축복’이다.
하지만 저소득층 소녀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 겪는 ‘마법’이 ‘끔찍한 고통’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거나 한부모 가정에서 성장하는 소녀들은 생리대 구입과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9일 국가통계 포털에 따르면 국내 저소득층 가정의 여학생은 약 10만명에 달한다. 이 소녀들에게 중형 사이즈 36개들이 1만원가량 하는 생리대는 비싼 일회용품이다. 그래서 이들은 생리대 대신 신발 깔창이나 수건, 휴지를 돌돌 말아 사용하거나 자주 교체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대체품을 사용하거나 생리대를 아끼기 위해 오랜 시간 교체하지 못하는 소녀들은 비위생적인 환경과 각종 질병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학교 보건실은 학생들을 위해 생리대를 비치해 놓고 있다. 하지만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소녀들이 생리대를 위해 보건실에 가는 것은 부끄럽고 어려운 일이다.
정부는 지난 2004년부터 생리대가 생활필수품이라는 점을 고려해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그러나 업체들은 오히려 가격을 계속 인상해 왔다.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가격 인상 소식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여론이 들끓었다. SNS에는 “저소득층 소녀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휴지를 사용한다는데 생리대 가격을 올리면 어쩌느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저 어릴 때 집이 가난하고 편부 가정이라 월경 때 신발 깔창으로 대체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얘길 들었을 때 받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라고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이게 21세기 한국에서 가능한 일인가?” “생리도 마음대로 못 하나”라며 안타까워했다. 국민일보가 이러한 저소득층 소녀들의 실태를 인터넷에 처음 보도하자 트위터에서 수천건이 리트윗되고 미국에서도 후원하겠다는 이메일이 오는 등 독자들의 반향이 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저소득층 소녀들의 생리대 후원을 위한 크라우드펀딩도 진행 중이다. 소셜벤처 회사 ‘이지앤모어'는 ‘한부모가정사랑회’와 협약을 맺고 지난달부터 저소득층 소녀들에게 생리대를 후원해 오고 있다.
이지앤모어의 노아림 팀장은 “저소득층 가정 자녀들이 비싼 생리대를 구입하지 못해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는 것은 흔한 일”이라며 “소녀들이 건강한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유한킴벌리는 생리대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사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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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는 지금] ‘깔창 생리대’ 안타까움… 기업도 움직였다
입력 2016-05-30 04:00 수정 2016-05-30 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