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정운호 법조 비리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핵심 난관’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외국인 임직원, 정부 정책담당자들, 현직 판검사들이다. 혐의입증도 쉽지 않으며,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렵고, 처벌 규정도 없는 탓이다.
순항하던 가습기 살균제 수사, 외국인 소환에서 주춤
지난 1월 본격 시작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의 가습기 살균제 수사는 최대 가해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외국인 임직원을 조사하는 단계에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수사팀은 그동안 독성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의 제조 및 판매 과정을 조사해 신현우(68) 전 옥시 대표 등을 포함, 관련자 6명을 구속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증거인멸 의혹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10년 5월부터 2년간 옥시 경영을 책임졌던 인도 출신 거라브 제인 전 대표가 검찰의 소환조사를 거부했고, 옥시의 외국 연구소 관계자 등 다른 임직원 소환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외국에 머물고 있는 전현직 옥시 임직원의 변호인들과 접촉해 이들의 귀국을 독려하고 있다. 옥시 영국 본사에도 임직원들이 검찰조사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사 측은 “개인의 일에 대해 회사에서 출석을 강요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협조거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법공조 등을 통해 제인 전 대표 등의 신병을 강제로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책임론, SK케미칼·애경 추가수사 문제도 부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정부 책임론과 SK케미칼·애경에 대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추가수사 요구도 검찰의 부담요인이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은 지난 23일 전 환경부 장관 및 담당 공무원 등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부 관계자들을 형사처벌할 법 조항이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현재 정부가 SK케미칼과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성분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 추가 조사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검찰은 다음 달 중후반쯤 지금까지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과정상 문제점을 중심으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나머지 수사를 이어갈 전망이다.
홍만표 변호사 로비의혹 밝혀질까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는 ‘정운호 법조 비리’와 관련한 핵심 피의자인 홍만표 변호사의 탈세 및 전관로비 의혹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지난 27일 홍 변호사를 소환조사한 검찰은 일단 홍 변호사가 10억원이 넘는 조세를 포탈했다고 잠정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르면 30일쯤 거액의 조세포탈과 수임비리 등의 혐의로 홍 변호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문제는 전관로비 의혹이다. 탈세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한 홍 변호사는 부당수임 및 전화변론 등 변호사법 위반 혐의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정 대표와 홍 변호사의 고교 후배인 법조브로커 이모(57·구속)씨 등을 추가 조사해 전관 로비 의혹을 밝혀내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정 대표의 만기 출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수사팀은 다음주 정 대표를 회삿돈 횡령 혐의로 재구속한 뒤 보강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그러나 전관 로비 자체가 증거가 없는 데다 관련자들이 부인할 경우 의혹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결국 현직 검사들에 대한 로비 의혹은 의혹으로만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의혹의 중심 달아난 브로커 언제 잡나
법조비리 수사를 촉발시킨 최유정(46·구속) 변호사 수사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최 변호사에게 정운호 대표와 이숨투자자문 실질대표인 송모(40)씨를 소개해준 것으로 알려진 브로커 이모(44)씨의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또한 최 변호사는 검찰 수사에서 현직 판검사에 대한 로비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은 제기됐지만, 이를 규명할 방법을 찾기 어려운 게 현재의 검찰 상황이다. 검찰은 한 달 넘게 종적이 묘연한 이씨의 신병을 최대한 빨리 확보해 최 변호사 관련 혐의를 추궁한다는 계획이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사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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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가습기살균제사망사건·법조비리 ‘3중의 벽’ 앞에… 檢 수사 ‘일단 멈춤’
입력 2016-05-30 0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