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른 기업 구조조정이 속도를 잃고 있다. 방향마저 오락가락한다. 원칙과 방향이 애매모호한데 일단 돈부터 쏟아붓고 보자는 논의만 무성하다. 잘못된 판단으로 수년간 천문학적 금액을 투입하고도 부실기업을 살리지 못한 책임을 지는 이들은 보이지 않고, 구조조정의 세부방안도 마련되지 않은 채 아까운 시간만 흐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미 늦은 구조조정=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중이던 STX조선이 법정관리로 전환한 것은 구조조정 시스템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다. 2013년 자율협약 이후 채권단은 STX조선 경영정상화를 위해 4조5000억원을 투입했다. 채권단은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법정관리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채권단의 대규모 손실과 협력업체 부실, STX중공업 등의 연쇄부실이 우려되기 때문에 자율협약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었다.
중소 조선사로 구조조정을 하면 2017년부터는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이라던 전망은 5개월 만에 사라졌다. 채권단은 법정관리를 언급하면서 STX조선에 대해 “신규 수주가 없고 유동성 부족으로 자율협약을 유지할 명분이 사라졌다”고 말을 바꿨다. 2010년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자본잠식 상태에서도 2조700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받은 성동조선도 경영정상화의 명분을 잃은 지 오래다. 전 세계 조선·해운 불황이 심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낙관적 전망만 되풀이한 것이 채권단의 손실에서부터 국가 경제에까지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런 무원칙은 금융당국의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열린 ‘제2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도 조선업 구조조정은 채권단에 맡기겠다며 나머지 4대 경기민감업종(해운·건설·철강·석유화학)의 구조조정 방향을 논의했다. 그러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지난해 말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거친 후 조선업을 범정부 협의체 논의에 포함시켰고, 지난달 26일에야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선정하는 등 오락가락했다.
조선사들의 재무상황은 악화일로다. 29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연매출 1조원 이상 조선사 9곳의 지난해 부채총액(연결 기준)은 102조6242억원으로 집계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9대 조선사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성동조선해양 SPP조선이다. 9개 업체의 부채총액은 2012년 89조1030억원에서 3년 만에 13조5212억원 늘었다.
개별 업체 중에서는 대우조선의 부채 규모와 증가 폭이 가장 컸다. 대우조선의 부채총액은 2011년 12조1577억원에서 지난해 18조6193억원으로 6조4617억원(53.1%) 증가했다.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의 개별재무제표 기준 부채비율은 7310%에 달한다.
◇큰 그림 없이 재원 마련 혼선=구조조정의 큰 그림도 찾기 어렵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해운사들이 해외선주들과 벌이는 용선료 협상,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사들이 내놓는 자구안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사라졌다.
조선업을 비롯해 부실업종의 대규모 인력감축이 현실화되면서 실업대책을 요구하는 정치권과 지역사회의 요구가 높은데도 정부는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조선업 근로자 3만명이 실직할 경우 실업률이 4%대로 치솟고, 조선업이 10% 위축될 경우 경제성장률은 0.2% 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감당하려면 현재 구조조정 대상인 주요 조선·해운사들에 투입되는 혈세 이외에도 수십조원에 달하는 돈이 더 필요하다.
구조조정 재원 마련도 ‘출자+자본확충펀드’라는 원칙 외에 세부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는 한국은행이 직접 출자를 해야 한다고 압박하지만 한은은 직접 출자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표영선 연구원은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하는 신속한 구조조정 추진을 위해서는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자본확충펀드 등 구조조정 재원 관련 구체적인 방안과 함께 근로자 실업문제 등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대응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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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구조조정 <1>] 원칙·방향 애매… ‘돈부터 쏟아붓자’ 논의만 무성
입력 2016-05-30 0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