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여자/ 여자/ 조선 여자/ 남자의 노예∼.”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소녀들이 어깨춤을 추며 창(唱)을 했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채플 중에 공연된 이화 창립 130주년 기념 창극 ‘스크랜튼, 이화를 꿈꾸다’의 한 장면이다.
이날 채플의 주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였다. 창극은 조선 여성의 암울한 현실과 이화학당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1832∼1909) 선교사의 헌신을 국악과 한국무용으로 구성했다.
극은 먼저 삼종지도(三從之道)에 따라 억압된 삶을 살았던 조선 여성의 현실을 조명했다. 이어 “너의 길을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국으로 향하는 스크랜튼의 모습을 그렸다. 조선에 온 스크랜튼은 “아이를 잡아먹는 서양귀신”이라고 매도를 당하지만 고아를 데려다 교육을 시작하고 고종으로부터 ‘이화학당’ 사액현판을 받는다. 조선 여성들의 꿈이 담긴 이화학당은 이처럼 스크랜튼의 뜨거운 기도와 헌신 속에 태동했다. 대강당을 채운 2000여 학생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25분 분량의 공연이 끝나자 갈채가 쏟아졌다. 학생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강은총(20·성악)씨는 “조선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준 스크랜튼 여사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채윤(21·식품공학)씨는 “여러 장면에서 울컥했다”고 했다. 김학영(27·대학원 음악교육)씨는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믿고 자기 길을 간 스크랜튼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 속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는 답답함을 표했다. 강씨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싶어도 가부장적 문화와 취약한 사회제도에 가로막힐 때가 많다”면서 “교회에도 양성 평등적 관점을 가진 남성이 드물고, 교회 중직자 중 여성 비율도 낮다”고 지적했다. 이주빈(21·작곡)씨는 “여성으로서 여러 차별에 맞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창극 채플은 이화여대 교목실과 한국음악과가 공동 기획했다. 예술감독을 맡은 안현정 교수는 “국악으로 복음을 표현하는 것은 한국민을 한국민답게 교육하고자 했던 스크랜튼의 정신”이라며 “이화국악앙상블이 반주하고 한국음악 전공 학생들이 연기했다”고 소개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조선 여성의 빛’으로 온 스크랜튼 삶 되새기다
입력 2016-05-29 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