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게 맨부커상을 준 영국은 채식주의자가 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27일(현지시간) 현지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의 채식주의자는 54만명이다. 10년 전 15만명이던 것에 비하면 급증했다. 동물을 해치지 않는 식생활이 바람직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그게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 것이란 생각도 깃들어 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육식을 거부한다. 폭력이나 인간에 내재된 악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또 남에게 해 끼치지 않는 방식의 삶을 선택한다. 그래서 극단적으로는 식물형 삶을 지향한다.
꼭 소설이 아니라도 주변을 둘러보면 삶의 스타일면에서 채식형과 육식형 사람들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정치 세계가 그렇다. 채식형은 가급적 자체 에너지로 삶을 영위해나가는 방식이다. 반면 육식형은 주변의 에너지를 적극 활용한다. 온화한 리더십과 강한 리더십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충돌을 피하는 정치와 충돌하는 정치로 표현할 수도 있다. 내실을 튼튼히 하는 통치와 확장형 통치로도 부를 만하다.
요즘 대표적인 육식형 정치인을 꼽으라면 단연 미국 공화당의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떠오른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먹잇감을 던져놓고 쓰러질 때까지 공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덩치를 키워나간다. 필리핀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로드리고 두테르테 역시 비슷한 스타일로 대권을 잡았다. 기존 지도자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육식형에 해당한다. 그 반대 방식의 정치인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국내에선 친노무현계에서 육식형이 많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그랬다. 유 전 장관은 최근에는 TV 출연 등을 통해 채식형으로 중화된 모습도 보인다.
채식형은 많지는 않지만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그에 해당한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친노계에서 드문 채식형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채식형에서 육식형으로 바뀐 케이스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처음에는 비건(물고기와 우유 치즈도 안 먹는 완전 채식)형 정치인으로 주목받다 지금은 세미 베지테리언(붉은 육류는 안 먹고 닭고기는 먹는 채식)쯤 돼 있다.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눈에 띄는 채식형이다.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남경필 경기지사나 원희룡 제주지사, 나경원 의원도 채식형 정치인이다. 김무성 전 대표나 탈당해 무소속이 된 유승민 의원은 과거는 어땠는지 모르나 지금은 육식형이 됐다.
권력을 잡는데 채식형이 좋을지, 육식형이 좋을지는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다르다. 마치 비즈니스 세계에서 채식형 기업인인 빌 게이츠나 육식형의 스티브 잡스가 모두 성공했듯 말이다. 결국은 당대 유권자들과 시대가 어느 스타일을 원하느냐에 달렸다. 미국 역시 오바마 대통령을 뽑아낸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 유권자들은 육식에 목말라하며 트럼프를 점점 더 선호하고 있다.
우리의 내년 대선은 어떨까. 지난 4년 너무 침체돼 나라가 좀 들썩들썩해지길 바라지 않을까. 최근 유럽과 남미에서 ‘억센’ 우파가 득세하는 것도 좀 시끄러워도 뭔가 큰 변화를 요구하는 바람이 작용한 때문이다. 앞으로 세계에 육식형 지도자들이 점점 더 많아질 텐데, 그럼 다들 맷집들을 좀 키워야 하지 않을까.
손병호 국제부 차장 bhson@kmib.co.kr
[뉴스룸에서-손병호] 육식주의자 대통령
입력 2016-05-29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