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표(57) 변호사는 2001년 12월 19일 서울지검 10층 조사실에서 검찰 15년 선배인 신광옥 전 법무부 차관을 조사했다. 특수1부 부부장이던 홍 변호사는 당시 ‘진승현 게이트’ 주임검사를 맡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로 직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수석과 비서관으로 호흡을 맞추던 사이였다. 조사 사흘 후 신 전 차관은 구속됐다. 홍 검사는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좋을 리 있겠느냐”고 대꾸했다.
14년5개월이 흐른 27일 홍 변호사는 ‘정운호 법조비리’의 핵심 피의자가 돼 서울지검 특수1부 10층의 영상조사실로 소환됐다. 오전 9시50분쯤 서울 서초구 검찰청사에 도착한 홍 변호사는 취재진 앞에서 “참담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근무했던 곳에서 피조사자로서 조사받게 됐는데, 이루 말할 수 없다. 많은 심정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홍 변호사는 탈세 혐의와 관련해 “퇴임 이후 변호사로서 주말이나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다소 불찰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일부 시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사건 선임계를 내지 않고 이른바 ‘몰래 변론’을 했다는 의혹이나 수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그는 “오히려 영향력 행사, 그런 걸 안 하려고 몇 명의 변호사들과 같이 협업하는 절차를 취했다”며 “변호사로서의 변론 범위 내에서 열심히 일했다”고 주장했다. ‘싹쓸이 수임’을 통해 번 돈으로 200억원대 오피스텔·빌딩을 사들였다는 의혹에 대해선 “그것도 충분히 조사 받겠다”고 답했다. 5분여간 포토라인에 서서 입장을 밝히는 동안 그는 “제가 감당할 부분은 감당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홍 변호사는 이원석 특수1부장과의 면담 없이 곧바로 조사실로 들어갔다. 통상 유력 인사나 검찰 간부 출신 등이 소환되면 부장검사가 예우 차원에서 조사 시작 전 만나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이 부장은 홍 변호사의 10년 후배 검사로 직접 대면하기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2000년 대전지검 서산지청에서 평검사로 근무할 때 지청장이 홍 변호사였다.
‘수사 고수’인 홍 변호사는 이날 밤늦게까지 후배 검사들과 자신의 범죄 혐의를 놓고 치열한 수 싸움을 벌였다. 검찰이 증거를 상당 부분 확보한 탈세 혐의의 경우 검찰이 파악한 부분까지는 시인했다고 한다. 반면 구체적 자료로 입증하기 어려운 부당 수임 등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는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홍 변호사가 (혐의를) 인정하는 것도 있고, 부인하는 것도 있다”며 “본인 입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진술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조사 결과를 분석한 뒤 신병처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수순이 유력해 보인다. 다만 그가 퇴임 후 2∼3차례 뇌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할 가능성도 있다.
지호일 황인호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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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28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