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동맹 과시했지만… ‘일본=전범국’ 이미지 희석 우려

입력 2016-05-27 18:42 수정 2016-05-29 01:00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27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해 피폭 사몰자 위령비에 헌화한 뒤 주변에 앉아 있던 피폭 피해자를 찾아가 포옹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맨 왼쪽)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동안 일본은 오바마 대통령의 평화기념공원 방문뿐 아니라 피해자와의 만남도 적극 추진해 왔다. AP뉴시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7일 일본 히로시마 방문은 원자폭탄을 전쟁에 처음 사용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71년 만에 피폭 희생자들을 기렸다는 의의가 있다. 특히 이를 통해 한층 더 굳건해진 미·일동맹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이런 행보는 다분히 동·남중국해에서 무리한 확장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차원이지만 히로시마 방문을 통해 태평양전쟁의 ‘가해국’인 일본이 마치 피해국인 것처럼 비치게 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런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해상 진출을 견제하는 내용의 선언문을 도출한데 이어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까지 성사시킴으로써 얻을 것을 다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익 위해 ‘과거 덮는’ 행보 연장선=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행은 그동안 일본이 꾸준히 요청해온 사안이다. 특히 우익의 눈치를 봐야 하는 아베 총리가 1년 전부터 공들여온 프로젝트다. 우익은 원폭 투하국인 미국의 지도자가 피폭지인 히로시마를 직접 찾아와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행이 ‘사과 행보’로 비칠 것이란 점을 알면서도 찾아간 것은 결국 미·일동맹 강화가 일부의 비판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동·남중국해에서 계속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에 맞서려면 일본의 도움이 절실한 실정이다. 일본에 오기 전 베트남을 방문해 무기수출 금지를 전면 해제한 것 역시 ‘과거’보다는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원폭 투하를 사과하지는 않았지만 히로시마에서 줄곧 아베 총리와 함께함으로써 ‘과거를 잊고 함께 전진한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알렸다. 특히 현지 연설에서 “미·일동맹 관계뿐 아니라 우정을 구축했다”면서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가해자 미국’ 부각=일본 정부와 언론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원폭 투하국의 피해국에 대한 추모’임을 부각시키려 애썼다.

아베 총리도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한 연설에서 “나와 오바마 대통령은 원폭 투하 때문에 희생된 모든 사람에게 애도를 표했다”며 “이런 비참한 경험을 절대 반복돼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미국과 일본의 화해라는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든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는 가해국 미국의 지도자가 히로시마를 찾아온 것 자체가 과거에 대한 ‘역사적 반성’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방문을 ‘원폭 투하 국가로서의 도의적 책임’이라고 묘사했다.

◇한국, 중국 등 피해국들은 반발=이날 한국인 피폭자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소속 피폭자 6명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별도로 헌화식을 진행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이들은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이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아베 정권의 의도에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도 발표했다.

우리 외교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위령비를 방문하지 않은데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연설에서 한국인 희생자를 명시적으로 애도한 것을 평가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자국 내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한 질문을 받고 “히로시마는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일본에 의한) 난징 대학살을 잊으면 더욱 안 된다”고 꼬집었다. 또 “피해자는 동정을 받아야 하지만 가해자는 영원히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월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