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동료를 살해했던 한국인 살인용의자가 11년 만에 한국에서 구속됐다. 필리핀과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달라 빚어진 일이었다.
2005년 10월 5일 새벽, 필리핀에서 한국인 지모(사망 당시 29세)씨가 살해당했다. 필리핀 경찰은 유력 용의자로 지씨 집에 함께 있던 전모(41)씨를 지목했다. 필리핀에서 여행가이드로 일하던 지씨는 한국에서 마땅한 직업이 없던 전씨에게 필리핀으로 와 같이 일하자고 권했었다. 넉 달간의 동거는 금전 문제로 틀어졌다. 필리핀인 가정부가 다투는 소리를 듣고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전씨가 막아섰다고 한다. 이후 전씨는 집을 빠져나갔고, 가정부는 방 안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지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전씨는 그날 저녁 필리핀 경찰에 체포됐다.
그런데 필리핀 법원에서 일이 틀어졌다. 재판부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해 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결정적 증언을 해 줄 가정부가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리핀 법원은 증인들이 법정에서 진술해야만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전씨는 체포된 지 5년 만인 2010년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다. 강제추방 등 후속조치도 없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필리핀을 떠돌던 전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난 3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죗값’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경찰은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을 통해 전씨의 귀국 소식을 듣자마자 범행에 쓰인 흉기, 부검결과서 등 관련 자료를 입수했다. 입국과 동시에 임의동행 형식으로 전씨를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해 자백을 받아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11년 전 필리핀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귀국한 전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고 27일 밝혔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사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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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한인 살해범’ 11년 만에 죗값 치른다
입력 2016-05-27 18:49 수정 2016-05-27 1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