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적률은 욕망과 규제의 전쟁터

입력 2016-05-29 20:14
지난 26일(현지시간)부터 이틀 간 언론 등에 사전 공개된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시 전경. 다세대, 아파트 등이 빽빽한 서울 사진에서 빨간색 표시 부분은 발코니, 다락 등을 확장한 면을 표시한 것으로, 전시 주제인 ‘용적률 게임’이 주거 형태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지진으로 무너진 학교의 재건 과정을 설치와 영상으로 표현한 태국관 전경. 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전쟁과 난민, 재난과 경제위기, 그리고 재생…. 건축이 마주한 전선(戰線)은 이렇듯 다양했다. 세계 최대 건축 제전인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이 28일(현지시간) 베니스의 자르디니 국가관과 아르세날레 전시관에서 동시에 열렸다. 전시는 공식 개막을 앞두고 이틀 간 언론 등에 사전 공개됐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올해 수상자인 칠레 출신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총감독이 제안한 이번 주제는 ‘전선에서 알리다’이다. 60여개국 200여명 작가가 참여해 ‘전선’이라는 주제에 대해 폭넓은 해석을 내놓았다. 생존을 위한 사투에서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대안 찾기까지.

◇한국관 “전시 자체도 용적률 게임”=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커미셔너를 맡고, 서울시립대학교 김성홍 교수가 예술감독으로서 총괄해 준비한 한국관 전시 주제는 ‘용적률 게임: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이다.

지난 50년 동안 서울의 변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키워드이자 집단적 욕망을 드러내는 지수(指數)인 ‘용적률’을 한국건축의 최전선으로 해석한 것이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서 잠실 종합운동장을 바라보며 찍은 대형 사진이 낯설게 다가온다. 다세대 주택, 아파트 등이 빽빽한데, 흑백의 사진 곳곳에 빨간색이 표시돼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법이 허용하는 용적률 테두리에서 전략과 전술을 통해 발코니, 다락, 지하 등을 확장한 면을 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집장사의 영역이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젊은 건축가들이 가세하고 있다. 용적률 게임이 양적 경쟁에서 질적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비슷한 경제성장을 겪을 동아시아 대도시에 모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진, 도표, 모형과 함께 미술작가들의 영상과 사진 작품을 활용, 용적률 게임의 현상과 이면을 시각화했다. 한국관은 국가관 중에서 가장 협소하다. 선택과 배제가 없는 지나친 나열 탓에 전시 자체도 용적률 게임을 벌이는 듯 했다.

◇전쟁과 난민, 재난과 경제위기, 그리고 재생=네덜란드관은 유엔평화유지군의 천문학적 비용을 주둔지역의 생활 개선에 쓸 것을 제안하는 ‘블루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처럼 전쟁 문제를 직접 언급한 국가관도 있지만, 더 큰 줄기는 재난과 난민, 경제위기 등에 대한 건축계의 고민과 대응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사회적 건축’으로 집약된다.

중동·아프리카 각국 난민의 종착지인 독일은 난민 주거 문제를 다룬 ‘도착한 나라 독일, 고향 만들기’를 주제로 내걸었다. 임시 주택 등의 건설 장면 등을 찍은 사진 만으로 구성됐는데, 시각적으로 쉽고 즉각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유로존 재정위기의 축인 스페인은 경제위기 이후 미완 상태로 버려지거나, 공실이 된 건축물의 문제를 건축가의 과제로 껴안은 ‘미완의(unfinished)’가 주제다.

재난도 중요한 주제로 다뤄졌다. 인근 아르세날레 전시관에 국가관을 마련한 태국의 주제는 ‘6.3 교실: 2014년 챵로이 지진 후 9개 학교 만들기’이다. 당시 이 지역을 강타한 규모 6.3의 지진으로 많은 학교가 무너졌다. 빽빽이 꽂은 긴 쇠줄 막대 위에 집 모양의 나무 조각이 불안하게 걸려 있다. 쇠줄 막대는 끊임없이 흔들려 지진에 안전하지 않은 현실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런 설치물 너머로 보이는 영상에는 초등학생들의 슬픈 눈동자, 지역의 아름다운 경치, 재건 과정이 담겨 있다. 시적인 설치미술 작품을 보는 듯 하다.

아라베나 총감독이 기획한 본 전시 초청 각국 작가들은 대체로 ‘재생’을 화두로 삼았다. 콜롬비아 작가 시몬 벨레즈는 대나무를, 방글라데시 아나 헤링거는 ‘진흙’을 지속가능한 건축 재료로 제시한다. 특히 벨레즈는 대나무를 ‘식물 강철’이라 부르며 부유층 뿐 아니라 빈민층을 위해서도 지었던 자신의 대나무 건축 사진을 전시한다.

◇전시 기법도 눈길…딱 1점 전시한 나라도= 흔히 건축전은 건축 모형, 도면, 사진 등으로 꾸며진다. 그래서 자칫 밋밋하거나 어지럽게 비칠 수 있다. 사진이나 도면 등을 쓰더라도 스페인관처럼 디스플레이 방식을 바꿔 식상함을 걷어낸 경우도 있다. 일본관은 특유의 아기자기함으로 들여다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장기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 문제, 동일본 대지진 등 일본이 처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내건 주제는 ‘연(緣)의 예술’이다. 공유주택, 귀농마을 등 12가지 사례를 소개하는데, 인형의 집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정갈하고 앙증맞은 건축 모형이 탄성을 지르게 한다.

역발상처럼 건축물 하나만을 압도하듯 설치한 곳도 있다. 스웨덴은 전시관을 꽉 채우는 피라미드형 나무 설치물을 전시관 전체에 떡하니 설치했다. 태국, 칠레처럼 설치미술 작품을 연상시키는 국가관도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은 11월 27일까지 열린다.

베니스=손영옥 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