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의 ‘매직넘버’(대선후보 지명 요건)를 모두 채운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자신이 집권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치적인 파리기후협약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민주당의 선두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제치고 2위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맞짱 TV토론을 갖자고 제안하는 등 파격적인 언행을 이어갔다. 샌더스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으나 양당 지도부는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반면 클린턴은 국무장관 재직 시절 ‘개인 이메일 사용이 규정을 위반했다’는 국무부 발표로 타격을 입은 데 이어 오는 7일로 예정된 캘리포니아 경선에서 샌더스와 박빙의 싸움을 할 것으로 예상돼 궁지에 몰렸다.
◇기세등등 트럼프=경쟁자들의 경선 포기로 공화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사실상 거머쥔 트럼프는 26일(현지시간) 지역 경선에 얽매이지 않는 일부 슈퍼 대의원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누적 대의원 수가 1238명으로 늘어났다. 매직넘버 1237명을 넘어선 것이다. 예상을 깨고 클린턴보다 매직넘버를 먼저 채운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를 결속시키기 위해 연일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노스다코타주 비스마르크에서 열린 석유업계 콘퍼런스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파리기후협약을 폐기하겠다고 주장했다. 또 캐나다∼미국을 잇는 키스톤 XL송유관 건설을 허용키로 했다. 아울러 석탄산업을 지원하고 유엔 녹색기후기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환경 분야 주요 정책과 성과를 모두 뒤엎겠다는 것이다.
이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이세시마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트럼프의 공약을 보면 그가 세계가 돌아가는 것에 얼마나 무지한지 잘 드러난다”고 비판한 것에 대한 반발 성격이 짙다.
그는 또 클린턴을 따돌리고 샌더스를 본선 상대로 치켜세웠다. 그는 1000만∼1500만 달러(약 118억∼177억원)의 자선기금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샌더스와 맞짱 TV토론을 갖자고 제안했다. 경선이 끝나기도 전에 소속 정당이 다른 후보들끼리 TV토론을 한 전례가 없어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이에 샌더스 캠프의 마이클 브릭스 대변인은 “환영한다”며 “트럼프가 진짜 토론을 원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답했다. 샌더스 측은 “기왕이면 캘리포니아 경선이 열리는 6월 7일 이전에 토론을 갖자”고 수정제안했다.
◇수세 몰린 클린턴=클린턴은 캘리포니아 경선을 앞두고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샌더스와 박빙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공공정책연구소(PPIC)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의 지지율은 46%로, 샌더스(44%)를 겨우 2% 포인트 앞섰다. 오차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어서 뚜껑을 열어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캘리포니아는 대의원이 475명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어서 매직넘버의 97%를 채운 클린턴으로선 본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곳이다. 설사 클린턴이 캘리포니아에서 지더라도 대선후보가 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만일 샌더스에게 패할 경우 본선 경쟁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이 예상된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 조사에 따르면 클린턴은 전국적인 지지율에서도 트럼프에 겨우 1% 포인트 차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 본선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월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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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넘버 채운 트럼프 “기후협약 탈퇴·화석연료 육성”
입력 2016-05-27 18:48 수정 2016-05-28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