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간 400건 수임… 홍만표 ‘前官 신공’

입력 2016-05-27 04:00

‘엘리트 검사’였던 홍만표(57·사진) 변호사가 결국 피의자 신분으로 친정에 불려오게 됐다. 그는 퇴임 후 검찰청이 내려다보이는 빌딩에 사무실을 내고 검찰의 주요 사건을 쓸어 담듯이 수임했다. ‘전관’의 위력으로 4년8개월간 수백억원대 재산을 축적한 과욕이 지금의 화(禍)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는 지난 11일 홍 변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이후 400여건에 달하는 그의 수임 내역을 분석해 왔다.

2011년 9월 개업한 홍 변호사는 3개월 만에 24억7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국세청에 신고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85억9000만원을 벌었다. 이 기간 중복된 의뢰인을 포함해 모두 182건의 사건을 맡은 것으로 돼 있다. KT와 SK텔레콤 및 현대건설, 대림산업, 삼성물산, 하림그룹 등이 수임료나 자문료를 지급했다. 2400억원대 유사수신행위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돈업체 D사도 4억원대 수임료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홍 변호사가 정식 선임계 없이 이른바 ‘몰래 변론’ ‘막후 변론’한 사건 파악에 보다 집중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26일 “선임계를 내지 않고 변론한 행위는 종종 탈세와 연결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부부,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 강덕수 전 STX 회장, 김광진 옛 현대스위스저축은행 회장 등 내로라하는 재력가들이 홍 변호사의 숨겨진 고객이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4년여간 검찰이 진행한 대형 기업비리나 유력인사 수사가 결과적으로 홍 변호사의 금고를 채우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블랙홀처럼 사건을 빨아들이다 탈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27일 홍 변호사를 피의자로 부른 건 수사 베테랑인 그의 방어 논리를 깰 만큼의 증거를 확보했다는 뜻이다. 우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과 변호사법 위반 혐의 적용이 유력하다.

검찰은 홍 변호사의 ‘외근 사무장’을 자처했던 브로커 이민희(56·구속)씨, 사건 의뢰인인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홍 변호사의 대질 조사도 염두에 두고 있다.

검찰은 홍 변호사가 실제 수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사건 처리 결과를 왜곡시켰는지에 대한 조사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직 검사들이 주요 수사 대상인 데다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 해도 기록상으로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적어 실체 규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후배 특수부 검사들의 심문을 받게 된 홍 변호사는 현직 시절 손꼽히는 ‘스타 검사’였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이 얽힌 수사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검사이기도 하다. 비자금을 찾아내는 데 발군의 실력을 보여 ‘계좌 추적의 귀재’라고도 불렸다. 이런 수사 경험의 영향인지 그가 검사장이 된 이후 공개한 재산 목록에는 ‘은행 예금’이 없었다. 변호사 개업 이후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도 부동산 투자에 투입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호일 황인호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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