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사적복제보상금 제도 왜 필요한가] “콘텐츠에 대한 보상, 이용자·창작자 모두에 이익”

입력 2016-05-27 00:55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명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 김병준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 손수호 인덕대 교수 겸 국민일보 객원논설위원(왼쪽부터)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대회의실에서 ‘사적복제보상금 제도’의 의미와 도입 필요성을 점검하는 좌담회를 갖고 있다.윤성호 기자

‘사적복제보상금 제도’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복제를 허용하되 복제기기의 생산·수입 과정에서 보상금을 부과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저작권단체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단계에 왔다”며 입법을 촉구한다. 국민일보는 2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대회의실에서 사적복제보상금 제도의 의미와 도입 필요성을 살펴보는 좌담회를 가졌다. 손수호 인덕대 교수 겸 국민일보 객원논설위원이 사회를 맡고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병준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 윤명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이 토론을 벌였다.

<좌담회 참석자>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병준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

윤명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

손수호 인덕대 교수 겸 본보 객원논설위원(사회)

-사적복제보상금 제도가 저작권계에서는 오래된 이슈지만 일반에는 아직 생소하다. 어떤 제도인가.

△이규호 교수=저작권법 30조에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 규정이 있다. 공표된 저작물을 개인적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에 준하는 범위에서 이용하는 경우 복제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적이용’이라는 범위가 모호해졌다. 기기(器機)의 이동성이 강화됐고 원본과 사본의 차이가 없어졌다. 실질적으로 모든 콘텐츠를 무상으로 복제할 수 있어 창작자에게 큰 피해를 준다. 이런 사적이용 복제에 대해 창작자에게 별도의 보상시스템을 강구하게 됐고, 그 결과가 사적복제보상금 제도다.



-디지털 환경에서 이 제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것 같다. 사적복제보상금 제도가 왜 국내에서만 도입이 미뤄지나.

△김병준 부회장=이 제도는 1965년 독일에서 처음 도입된 뒤 유럽연합 22개국을 비롯해 40여 나라에서 도입했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나 코트디부아르에서도 시행 중이다. 미국은 1992년, 일본은 1993년에 도입했다. 많은 나라들이 이 제도를 채택한 1990년대 초반은 복제기능을 갖춘 디지털 기기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다. 199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도 그 흐름을 탔다. 정부도 공감해 공청회를 10회 이상 열어 도입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그런데 제조업체를 대변하는 당시 산업자원부에서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시기상조가 이유라면 ‘적정시기’도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이 적기라고 보는가.

△윤명선 회장=입법 보류 이유가 징수방법, 부과대상, 부과기준, 분배방법에 대한 연구가 미비하다는 것이었다. 이건 명분일 뿐 중요한 것은 복제기기를 만드는 사람이 창작자에게 보상하려는 마음이다. 권리자 단체들의 운영도 예전과 달리 아주 투명하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만 하더라도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으로부터 모범운영 사례로 인정받았다.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분배의 공정성 확보가 어렵지 않다.



-이 제도의 문화적 배경은 뭔가.

△김 부회장=사적복제보상금 제도는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와 부합한다. 창조경제를 꽃피우려면 기술에 문화가 탑재돼야 한다. 혁신기술을 가진 기업은 콘텐츠에 대한 보상을 하면서 다양성을 확보해야 성장을 견지할 수 있다. 이 제도가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주장은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사적복제보상금의 기준을 만드는 대신 사적이용의 영역을 확대하면 양쪽 다 이익이다.



-‘디지털 시대의 창작 및 저작권 심포지엄’에 갔더니 “삼성은 프랑스에서 충실하게 사적복제보상금을 내는 데 이제 한국에서도 지불해 주기 바란다”는 프랑스음악저작권협회(SACEM) 로랭 프티지라르 회장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교수=몇 년 전 SACEM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적복제보상금을 가장 많이 내는 기업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삼성이라고 답했다. 10위 안에 하이닉스와 LG도 포함됐다. 프랑스에서는 복제보상금을 수입업자에게 부과한다. 프랑스 시장에 들어가려면 이 돈을 안 낼 수 없다. 유럽에서 군말 없이 내는 보상금을 국내에서 내지 않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나라도 중국 제품을 많이 쓰는데 그 제품에 사적복제보상금을 부과하면 창작자에게 갈 돈을 걷을 수 있다. 이는 국가 이익과도 부합한다.



-저장매체를 다 포괄한다면 범위는 어디까지로 상정하는가.

△윤 회장·김 부회장=예전에는 카세트테이프 등이 주류를 이뤘지만 지금은 디지털 기기를 망라한다. 대표적인 게 촬영과 녹음, 녹화, 스크린샷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이다. 요즘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 학생들은 필기 대신 강의 영상을 찍는다. 복제행위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저작자의 권리가 침해되고 창작자의 대가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적복제보상금 제도를 도입한다면 어떤 모델이 바람직한가.

△이 교수=단연 독일 모델이다. 독일은 제조업자, 수입업자, 유통업자를 포함시킨다. 학교나 공공도서관 등 공공기관의 경우 기기 운영자가 해당된다. 일본은 이용자에게 물리는 데 메커니즘이 비효율적이다. 프랑스는 제조자가 별로 없기 때문에 수입업자만 잡으면 된다. 기업들은 사적복제보상금을 줘서 문화의 내실을 기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책무의 한 형태라고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법 과정이 순탄치 않을 텐데.

△윤 회장=이 문제는 한 국가의 차원에서 머물러서 안 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를 상대로 마케팅하는 과정에서 문화를 활용해야 한다. 문화발전이 기업이익과 같이 갈 수 있다. 다음달 1일 파리에서 열리는 CISAC 총회에서 프랑스 총리가 아시아 국가 회장들과의 면담을 잡아놓고 있다. 사적복제보상금 때문이라고 본다. 정부나 기업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베트남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 연대해 사적복제보상금 도입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고자 한다.



-사적복제보상금 도입의 당위성은 충분히 논의된 것 같다. 키를 쥐고 있는 정부와 국회, 기업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김 부회장=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 아직도 사적복제보상금 제도를 논의하고 있다는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디지털 기기 산업이 망했냐면 그렇지도 않다. 동반 성장이 가능하다.

△윤 회장=기업이 파는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문화의 가치도 인정해야 한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자세의 문제다.

△이 교수=한국이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려면 문화강국의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기술력으로는 앞으로 중국을 앞서기 쉽지 않다. 지속성장 가능한 모델은 기술과 문화콘텐츠의 결합이다. 이걸 이루려면 이런 제도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정리=홍석호 기자 wi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