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상정 거부는 국회의장 권한”… 정치력 문제 지적

입력 2016-05-26 18:29 수정 2016-05-26 21:27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26일 국회선진화법 권한쟁의 심판 사건 결정을 위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국회선진화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린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26일 헌재가 내놓은 결론은 ‘각하’였다. 심판 청구 자체에 법리적 흠결이 있어 내용을 판단하지도 않겠다는 답변이었다. 국회선진화법의 쟁점들을 겨냥한 명시적인 위헌성 언급은 없었지만 헌재가 사실상 새누리당 의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직권상정 거부, 의원 권리 침해할 가능성 없다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 등이 청구한 이번 권한쟁의심판의 핵심 쟁점은 국회법 제85조 1항, 즉 직권상정의 제한에 대한 것이었다. 직권상정이란 국회의장이 안건의 심사기간을 지정하고, 위원회가 기간 내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본회의에 직접 부의하는 제도다. 이런 직권상정은 다수파 의원들이 소수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법안을 곧바로 통과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됐고, 여야 간 충돌을 부르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실제로 직권상정이 역대 최고치(98건)를 기록했던 제18대 국회의 경우 외신으로부터 “국회 폭력의 세계 선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국민의 신뢰 저하, 국가의 대외적 평판 하락 등을 걱정한 국회가 2012년 만든 것이 바로 국회선진화법이었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 경우를 명확하게 한정한 것이 골자였다. 국회법 제85조 1항은 천재지변과 국가비상사태, 그리고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하는 경우에만 국회의장이 심사기간을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새누리당은 애초 선거 공약으로 채택할 정도로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국회의장이 몇 차례 직권상정을 거부하자 법안의 위헌성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주 의원을 포함한 146명의 국회의원은 2014년 12월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북한인권법안 등 11개 법률안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요구했지만 정 의장은 국회선진화법을 근거로 거부했다.

주 의원 등은 국회의원의 법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했지만 헌재의 판단은 달랐다. 직권상정이든 아니든 국회의원의 권리가 침해당할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또한 문제의 국회법 제85조 1항의 위헌 여부에 상관없이 심사기간 지정 여부는 여전히 국회의장의 권한이라고 헌재는 판단했다.

판단 요건도 안 되는 쟁점…“국회,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또 다른 쟁점은 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요건과 관련한 것이었다. 나성린 의원 등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 11명은 지난해 1월 국회 기재위원장에게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을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해 달라며 표결을 요청했지만 기재위원장은 거부했다. 당시 기재위원장의 거부 근거는 “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요구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국회법 제85조의 2였다.

50%와 60%로 쟁점화한 의결 기준 이슈를 두고 과연 헌재가 다수결의 원칙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도 이번 권한쟁의심판에서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헌재는 이 이슈에 대해서도 각하 결정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심판 대상으로 올라온 사건 자체가 소관 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의 서명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기재위원은 26명으로 11명은 과반수조차 아니었고, 따라서 표결 권한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식물 국회’ 비판을 받기도 하는 국회선진화법이지만 헌재는 “지연입법도 문제지만 졸속입법 역시 문제”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가 요구하면 국회의장이 의무적으로 해당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야 한다는 일각의 의견에 대해 헌재는 “독재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입법기능 장애를 지적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여야 정치력의 부재로 발생하는 것이지 입법절차를 규율하는 국회법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헌재는 민주적인 절차로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음을 강조하며 국회의 자율성을 에둘러 촉구하기도 했다. 헌재는 “국회의 다수파 의원들이 권한쟁의심판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헌재가 개입하게 되면 국회의원이 번번이 사법적 수단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떨쳐버리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경원 양민철 기자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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